어르신은 인형작가_3
4월 19일, 어르신들과 처음으로 인형을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
손인형은, 마치 주방장갑처럼 생긴-모양 때문에 종종 주방장갑으로 써도 되겠다는 말을 듣는다.- 무지에 그림을 그려 넣고 색칠을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천을 받아 든 어르신들은 "어? 그림 못 그리는데"라며 잠시 주저했으나 이내 몇 가지 샘플을 참고해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어 나갔다.
어르신들이 아니래도 보통 손인형 만들기를 처음 할 때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빈 천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는 게 조금은 막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모델을 보고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무지에 활짝 펼쳐 놓기도 한다.
어르신들의 당황스러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모델을 보고 일단 따라 그리는 어르신도 있었고 평소 마음에 두던 캐릭터를 찾아서 그리는 어르신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과 인형 만들기 체험을 함께 하지만 정작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 많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체험객들로부터 캐릭터를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아는 캐릭터래야 호빵맨, 도라에몽, 짱구, 미니언, 토토로 정도였다. 보노보노도 포켓몬의 많은 캐릭터도 주로 꼬마 체험객들 덕에 알게 됐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의외로 뽀로로와 빵구대장 뿡뿡이였다. 뽀로로가 어린이들한테 인기가 많아 뽀통령으로 불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다. 어르신들은 지금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는데 그건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동화구연이나 이야기 할머니 활동을 하시면서 어린이들을 매일 만나고 있어서였다.
상상도 못했다, 어린이의 눈높이를 가진 어르신들의 세계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뜻밖에도 손인형 수업에는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고작해야 처음 사용하는 염색 물감을 사용할 때 번지지 않도록 잘 말려가며 칠해야 한다는 정도.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색깔은 이게 낫지 않아?"
"아, 이렇게 앞뒤로 캐릭터를 만들면 좋겠다."
어르신들은 어느새 호기심과 상상력 가득한 아이가 되어 인형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어느 색깔이 예쁠지 비교하고 혼자서 지그시 인형을 바라보며 그 다음 구상을 했다. <어르신은 인형작가>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어르신들은 이미 작가였다.
나로서는 얼핏 알았던 뽀로로는 어르신들 덕에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아예 몰랐던 루피와 패티까지 어르신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손인형 만들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는데 신기하게도 첫 수업에서는 뽀로로와 루피, 패티의 인기가 높았고 두 번째 수업에서는 방귀대장 뿡뿡이 인기가 높았다. 방귀대장 뿡뿡이를 그다지 눈여겨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배경 색상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꽤 귀엽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손인형을 만들면서 완전히 어린이가 되신 듯 눈높이를 맞췄다. 이 손인형을 아이들이 보면서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인형들은 유치원 수업에 잘 활용되기도 했지만 많은 손자 손녀들에게 행복하게 전달됐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