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인형작가_4
어르신들과 함께 만들어 본 두 번째 종류의 인형은 커트지를 활용한 인형.
말 그대로 인형 모양의 천을 '커트'해서 만드는 것이라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다.
커트지 인형의 디자인은 내가 직접 했다.
세계인형박물관에서의 수업이니 다양한 나라의 문화적인 인형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 싶었고
기왕이면 '행운'의 마스코트가 될 수 있는 인형 중에서 골랐다.
먼저 떠오른 것이 마트료시카. 일단 디자인이 깜찍하고 누구나 잘 아는 인형이기에 적당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마네키네코로 정했다. 귀엽고 넉넉한 풍채의 복고양이.
오른발을 든 모양은 돈을 부르는 의미, 그리고 왼발을 든 모양은 손님을 부르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한복 입은 소녀를 디자인했다.
인형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이번 수업에서도 다양한 인형을 만들 것이지만
어르신들은 천을 맞대어 만들고 그 속에 솜을 넣는 인형을 반가워하셨다.
그리고 바느질이 빨랐다!
놀랍게도 세 종류의 커트지 인형을 바느질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 세대에서야 바느질이 서툰 사람도 많지만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그 시절에는
아마도 바느질은 필수적인 여성의 역할 중 하나로 요구됐으리라.
이럴 때 기분이 이상해진다.
고생한 그 시간들이 그래도 능력이 되어 이렇게 작게나마 보상을 받는 건가.
반면 이번 수업에 유일한 할아버지 참가자인 문영규 선생님은 인형을 만들면서
바느질을 처음부터 배우다시피 하셨다.
수업 시간 내에 다 못해서 집에 인형 재료를 들고 가셔서는 완성사진을 따로 보내주셨다.
'바늘에 수시로 찔리면서 해냈다'는 설명과 함께.
(수업 시작에는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할머니가 많다고 두 번째 수업부터는 오지 않으셨다. ㅠㅠ)
커트지 인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선 설명도 필요 없었다.
쉽고 앙증맞은 모양이라 만들기도 쉬웠고
어르신들은 연신 "예쁘다""곱다"는 표현을 하며 만들어 나갔다.
인형을 만들며 솜을 넣는 작업은 묘하다.
솜을 넣으나 마나 무생물인데 솜을 넣어 인형이 빵빵해지면
마치 솜 넣는 작업이 인형에 생명이라도 불어넣는 듯 경건한 작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솜의 느낌이 좋다.
인형을 만들 때는 한쪽으로 뭉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방울솜을 쓴다.
박물관에서 체험을 하는 아이들은 열 중의 아홉 명은 인형 만들기를 하다가
그 방울솜의 촉감에 빠져 버린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포근함, 편안함, 귀여움.
쉽게 만들었던 커트지 인형은 그 장점들로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