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인형작가_5
어르신들과 세 번째로 만든 인형 종류는 그림자 인형이다.
대개의 인형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에서 발달한 것과 반대로 그림자 인형은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양에서 두드러지게 발전했다.
그림자 인형의 그 은유적 표현이 동양과 잘 어울려서일까 싶을 정도다.
그림자 인형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작동하는가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림자 인형 첫 번째 시간에는 전형적인 중국 그림자 인형 패턴이 그려진 종이에 색을 칠했다.
그렇게 색칠이 된 종이 그림자 인형은 관절 부분을 따로 오려내서 연결지점을 펀치로 뚫은 뒤
할핀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종이 그림자 인형의 뒤편에는 나무젓가락을 테이프로 연결시켜
인형을 뒤에서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면 종이는 불투명한 재질이어서 까만색의 그림자 인형 공연을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그림자 인형을 보면 나무 재질이어서 어차피 그림자로는
그저 까맣게 나타나는 데도 나무 인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칠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르신들도 그랬다. 어차피 까만색으로 나타나는 그림자 인형을 예쁘게 장식했다.
화려하고도 대담한 색깔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르신들의 종이 그림자 인형은 그림자 인형극만 하기엔 아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림자 인형 두 번째 시간에는 그림자 인형의 묘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게
투명한 재질-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투명 플라스틱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린 뒤 색을 칠해서 철사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투명한 재질을 사용하면 빛이 이 재질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그림자 인형의 신비로움을 간직하면서도 보다 다채롭고 환상적인 그림자 인형의 연출이 가능하다.
인형만들기 수업을 하면서 어르신들이 사람 모양만을 만들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어르신들은 투명한 재질의 그림자 인형을 만든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이미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펼치셨다.
도움이 될까 집에 있던 팝업 동화책을 들고 와 수업 시간에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플라스틱 재료를 이용한 그림자 인형 만들기는 팀을 나누어 실시됐다.
몇 명이라도 팀을 이루어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무슨 이야기를 그림자 인형으로 만들 것인가에 서부터 시작해서 캐릭터의 성격, 모습 등에 관한
열정적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고는 투명 플라스틱 재료 위에 숲 배경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종류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차량을 하나하나 만들기도 하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주제로 해서는 일곱 난쟁이를 한 명 한 명 만들어 내셨다.
두꺼운 재질 탓에 오리기에 힘이 많이 드는데도 그런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옆모습의 사람 인형만 만들 것이라 짐작했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기분 좋게 어긋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