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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Sep 17. 2017

차곡차곡 마트료시카처럼

어르신은 인형작가_6

세계인형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인형 혹은 체험을 꼽으라면 단연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다.

인형 안에 인형이 들어가 있는 특유의 스타일과 뭔지 모를 친근함이 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당기는 큰 요소이기도하다.


어르신들과도 마트료시카 만들기가 시작됐다.

마트료시카 색칠하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마트료시카를 예쁘게 만드는 그 굴곡진 면이

붓으로 색칠하기에는  까다로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에게 마트료시카 만들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마트료시카 인형의 신기함과 재미를 느끼고자 커리큘럼에 넣었다.


처음엔 간단한 스케치가 되어 있는 3피스의  마트료시카에, 또 그다음 시간에는 좀 더 섬세한 스케치가 그려져 있는 3피스의 마트료시카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만 칠하는 단계로 진행됐다.

이렇게 마트료시카에 익숙해진 뒤에는 아무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빈 마트료시카에 직접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했다. 그렇게 3피스의 마트료시카만 3개를 만들었다.


앞치마를 하고 붓을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

간혹 아이의 마트료시카 만들기를 도와주는 부모들이 "내가 붓을 몇십 년 만에 잡아보는지 모르겠다."며 낯설어한다.


어르신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어르신들의 그 '몇십 년'은 아이 부모들이 말하는 '몇십 년'에 '몇십 년'은 더 보탠 것일 터. 그러다 보니 아예 붓 드는 것조차 어색해하시는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까 화가 폼 좀 나나?""멋있어요, 형님! 나는 어때요?"


낯설지만 재미있는 인형, 서툴지만 진지한 색칠.

이제 꽤 오랜 시간 함께 수업을 하게 되며 어색함이 사라진 수업실에서는 많은 주제들이 화젯거리로 올랐다.

"아들 며느리가 같이 살자 하는데 어떨까?"

"난 혼자가 좋아. 이제 아무도 안 챙기고 집에 들어가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

"그래도 손주는 너무 예뻐!"

"내가 만드는 인형이 인기다 인기. 인형 만들어 가면 손자들이 좋다고 가져가."

"그러게, 나는 손주가 둘인데 인형 하나밖에 없다고 지네들끼리 다투기도 했어."


정보교환도 활발하다. 내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던 파주의 다양한 소식.

"율곡 수목원 가봤어? 거기 너무 좋더라."

"칼국수는 금촌역 앞 **지.""맞아, 거기 맛있더라. 우리 또 가자."

하지만 마트료시카를 만드는 어느 순간이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인형을 칠하는 데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다.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다른 인형들과 달리 마트료시카를 만들면서 눈이 침침해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넓은 부분을 칠하는 건 괜찮지만 섬세하고 좁은 부분을 칠하는 데는 아무래도 힘들어하셨다.

가장 힘들어 한 부분이 눈이다.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자세히 봐야 하고 그러면 눈에 무리가 따랐다.


눈 그리기를 좀 도와달라는 몇몇 분의 부탁에  마트료시카의 눈을 그려 넣었다.

 마트료시카를 줄 세워 놓고 하나씩 눈을 그려나갔다. 어르신들이 숨은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성모 마리아의 눈도 그려 넣고 부처님의 눈, 예수님의 눈도 그려 넣었다.

이렇게 다른 종교를 넘나들어도 되는 것인가. 공연히 경건해졌다. 어르신들이 내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지만

정작  긴장한 것은 나였다.


한 분의 마트료시카 눈을 그려 넣느라 집중할 때였다. 갑자기 내 앞으로 뭐가 쑥 나타났다.

방울토마토.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해 둔 간단한 간식이었는데...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시는 거였다.

너무 황송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처음엔 멈칫 거리기도 했는데 어느새 쑥쑥 잘 받아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황송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걸 한다고... 어르신들의 이런 사랑을 받는가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것처럼 지고하고 무조건적인 애정의 표현이 있을까.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수업에 오후 1시, 간혹 점심시간 지난 직후부터 오실 정도로 열정적이던 어르신들. 수업 때 미진했던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홀로 박물관을 찾아 두 시간이고 세 시간 가만히 앉아 열중하시던 어르신들. 그 다정함과 은근하면서도 뜨거운 사랑은 뭐랄까... 아궁이를 활활 태워 방 구들을 뜨끈뜨끈 지져놓는 은근한 뜨거움이다.


그뿐인가, 어르신들은 내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도 어르신들께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같은 '선생님'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엔 몸 둘 바를 모를 황송함이었지만 점점 그 호칭에 서로의 애정이 깃들어갔다.


어제 우리가 부르던 '선생님'과 오늘 부르는 '선생님'이 다르다.

호칭은 똑같아도 그 호칭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 주고받음이 더 짙어지는 까닭이다.

이즈음부터 어르신과 간혹 주고받는 문자에서도 하트가 많아졌다.


우리의 시간과 관계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포개져갔다.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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