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인형작가_8
호두까기 인형은 예정에 없었다.
그런데 박물관을 오가며 호두까기 인형을 우연히 보신 어르신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헝겊 인형 수업 이후 마트료시카 5피스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어르신들은 작은 사이즈라도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
호두까기 인형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가, 또 호두까기 인형의 재미있는 모양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훔친 것 같아 보였다.
호두까기 인형 재료를 다시 구해 수업 준비를 했다.
처음엔 아주 작은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그다음으로 30 cm 정도의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었다.
어르신들은 정말이지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호두까기 인형은, 몇 군데가 붓을 넣어 칠하기 어려운 점을 제외하고는 색칠하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특이한 것은 헝겊 인형은 자유자재로 많은 변화를 주어가며 만들던 어르신들은 호두까기 인형만은
우리에게 익숙한 크리스마스 색-빨강과 초록-을 선호하셨다. 분홍-민트색 조합으로 만든 어르신들도 있었고
조금은 다른 색으로 만든 어르신들도 있었다. 만들어놓고 보니 같은 색의 병정들이 나란히 서있는 것도 괜찮았다.
큰 호두까기 인형을 만드는 날은 우리의 마지막 수업 날이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내가 보기엔 왠지 어르신들이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미완성으로 남기지 않으려고 늦게까지 남아 마무리하고 가셨다.
큰 호두까기 인형도 눈이 어렵다고 많은 어르신이 내게 눈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셨다.
수업 때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호두까기 인형을 내 앞에 나란히 줄 세우고 하나씩 눈을 그려나갔다.
앉아서 호두까기 인형의 눈을 그리고 있는데 다른 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음식들이 내 앞으로 왔다.
어르신들이 계속 인형 눈을 그리고 있는 내게 간식을 먹여 주시는 것이다!
수업 외에 별로 한 것도 없이 나는 인형 만드는 장을 만든 것만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어르신들이 계속 인형 눈을 그리고 있는 내게 간식을 먹여 주시는 것이다!
쉴 틈 없이(?) 가만히 앉아서 그 간식들을 받아먹는 호사를 누렸다.
한 어르신은 인형 때문에 옆에 오셨다가 말씀하셨다.
"정말 처음에 인형에 색칠할 때는 내가 이걸 잘하겠나 싶었거든. 그런데 너무 좋아.
하다 보니까 더 예쁘게 만들고 싶고 잘하고 싶고... 인형이 좋네."
어르신들도 우리도 더 진지했다.
며칠 뒤 전시회도 벼룩시장도 예정되어 있지만 '마지막' 수업이라는 감회가 조금의 섭섭함을 안겼고 괜히 조용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인형을 만드는 동안 우리는 함께 그 선택과 결과에 집중했다.
어떻게 이 인형을 더 예쁘고 멋지게 만들까.
그러면서 작은 아름다움과 멋에 감동하는 소녀가 되기도 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원숙한 어른이 되기도 했다. 붓이나 바늘을 들고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작가였다.
우리는 인형을 쉽게 산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산 인형들은 반듯하고 흠잡을 데 없이 예쁜 데다 매끈하다.
어르신들이 만든 인형은 각양각색이다. 하나도 똑같은 모양이 없이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만들 때의 느낌에 따라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가끔 엉성해 보이는 인형도 있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형도 있지만
어르신들이 만든 인형들을 보다 보면 정겨움이 느껴진다.
붓질 한 번에 바느질 한 땀에 어르신들의 시간과 애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