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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Dec 09. 2017

매력적인 예술마을, 함께 빠져들다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천우연 

     

<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비교적 한가했던 어느 화요일 오전의 이른 시간, 30분쯤의 여유가 생겼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마침 근처에는 진작부터 가보고 싶었던 북카페가 있었다. 서교동 북티크.

북카페는 어디라도 맘에 들겠지만 내가 처음 간  북티크는  널찍한 공간에 책이 보기 좋게 진열이 되어 있었고 책 읽는 공간도 여유 있어 보여 더 호감이 갔다.     


서점처럼 편평한 매대에 진열된 책들을 살펴보던 중 ‘세계 예술마을’이란 제목에 호기심이 발동해 책을 들었다. 세계 예술 마을이 수십 군데씩 나와 있었더라면 구입까진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세계에서도 딱 네 군데의 세계 예술마을을 갔다. 게다가 꽤 오래 머물다 오기까지 했다. 그 마을들에 흠뻑 취할 시간이 충분했으리라.  궁금했다. 내가 일하는 곳도 헤이리 예술인마을. 그런데 세계의 다른 예술마을들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엔 내가 언젠가 그 예술마을들을 가보리라는 생각으로 책을 골랐다. 하지만 원래 잘 나가는 문화기획자였던 저자의 글을 따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격하게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았다. 저자가 고심해 고른 목적지들도 곳곳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면서도 모두 매력적이어서 나도 막 가고 싶어 지는 것이었다. 내게는 확실히 TV 프로그램이나 광고보다 책이 선동적이다.     

저자가 간 곳은 스코틀랜드 모니아이브 페스티벌 빌리지, 덴마크 보른홀름 시민학교, 미국 미네소타 ‘야수의 심장 인형 극단’, 멕시코 오악사카의 알레브리헤 마을이었다.     


모니아이브 페스티벌 빌리지는 이곳에 대한 글들을 읽기 전에 책의 페이지 양쪽에 걸쳐 나란히 펼쳐진 평화로운 초록빛 들에 하얀 집 한 채가 있는 사진에 먼저 맘을 뺏겼다. 사진 한 장만 보고도 그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가 이곳을 첫 목적지로 선택한 계기는 스코틀랜드의 한 문화단체가 매년 지역의 문화, 예술 자원을 활용해 가장 창의적인 공동체를 선발하는 시상식에서 이 마을에 대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 600여 명 중 절반 넘는 사람이 예술가로 매달 소소한 축제가 끊임없이 벌어져서 이름도 ‘페스티벌 빌리지’였다.    

 

한국에서 갑자기 날아온 저자에게 마을 사람들이 묻는다. “대체 이 마을에서 뭘 하고 싶은 거니?” 저자는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 “넌 오늘부터 모니아이브 사람이야!”

아, 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감동이었다. 문화란 게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담쌓지 않고 유쾌하고 열린 맘으로 기쁨과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것.     


마을의 노부부와 생활하게 된 저자는 주민 한 명 한 명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모으며 천천히 놀듯이 축제를 준비해 나가는 자연스러움에 빠져들었다. 8월에 열린 갈라데이에 마을 사람들은 재밌는 분장을 하며 각종 퍼레이드를 즐겼고 저자도 함께 했다.      


저자가 마을을 떠나는 날, 사람들은 저자를 위해 일정을 당겨 마을 신문을 인쇄해서 손에 쥐어주었다고 한다. 1면 기사는 “우연이는 떠나지만 다시 모니아이브에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라는 내용이었다고. 예술마을의 품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덴마크 보른홀름 시민학교는 내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면 가서 다녀보고 싶은 곳이다.

덴마크에는 17세 이상 성인들을 위한 인생학교가 있다고 한다. 누구나 입학할 수 있고 모든 학생은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학교의 특성에 따라  예술이나 스포츠, 종교, 철학 등에 대해 다시 배운다. 저자는 예술섬으로 유명한 보른홀름에서 시민학교 생활을 했다. 조회시간이면 노래 한 곡을 부른 뒤 수업을 시작하고 학생들이 급식 당번을 정해 밥을 차리는가 하면 기숙사 대청소며 학생 회의를 하는 곳. 학교 밖 프로그램이 따로 있어 외부 전시회나 콘서트에 참석하는 곳.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그림 그리고 도자기 빚는 곳.               

수업비는 한 달에 80만 원인데 장학금도 준다고.  저자는 장학금을 받아 20만 원을 낸 경험도 있다.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부터 감동이었다. 


덴마크의 복지 수준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는 많지만 덴마크 사람들 삶의 질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으며 더 잘 느꼈다고 할까.   책 내용을 잠시 옮겨 본다. 

‘베릿과 레이스는 말끝마다 덴마크에 살고 있는 것이 늘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나이가 들고 직업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삶, 지금 그들의 여유는 사실 그동안 냈던 세금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다다른 것일 뿐이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골고루 행복을 나누어 가지는 세금의 착한 순환, 덴마크의 세금은 부과가 아닌 모두를 위한 희망이었다. 이런 왕언니들에게도 걱정이 있다고 했다. 무슨 걱정이냐고 물으니 노년을 어떻게 더 즐기며 보내야 할지가 고민이라 한다.’     


심지어 저자는 다른 친구들에게 학교 가면 국가에서 용돈도 준다는데 대학을 왜 안 가느냐고 물었다가 전혀 뜻밖의 반응을 접했다. 덴마크 친구들은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니까. “덴마크 젊은이들에게 대학은 자신의 행복을 결정짓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관문은 아니야.”   덴마크 젊은이들의 답이었다.  


덴마크 보른홀름 시민학교에서 보낸 저자의 시간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도자기 만들고 싶을 때 도자기 만들기, 학교 사람들과 또 마을 주민들과 포크댄스 배우고 퀴즈쇼 참여하고... 원래 3개월 머물 계획이었던 저자는 예정보다 훨씬 긴 6개월을 시민학교에서 배웠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민학교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저자가 느낀 교훈은, 조금은 비슷한 업무가 있는 내게도 와 닿는 것이 많았다.      


-윗사람 눈치 보다가 놓쳐 버린 기회들

-스스로 옭아맨 한계 때문에 더 도전할 수 없었던 것들

-내 것을 챙겨야만 한다는 욕심 때문에 엉클어진 협업 작업들.     


그래서 저자가 한 결심은 이렇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를 만들지 않기

-성과 위주의 일을 만들고 허겁지겁 마무리하지 않기

-모호함에 대한 인내심 키우기     


이 결심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미국 미네소타 야수의 심장 인형 극단은 1973년에 만들어져서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야수의 심장 인형극단이 있는 미네소타는 이민자들이 많았는데 1975년 5월 1일 노동자의 날, 극단 워크숍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인형을 가지고 나와 거리를 행진했고 이것이 극단이 매년 갖는 ’ 메이데이 축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44년이라는 긴 시간을 극단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저자가 경험했던 앞의 두 예술마을과는 다른 분위기. 주민들은 축제 석 달 전부터 서로 임무를 나눠 가지며 준비했다. 청소며 회의가 이어지는 석 달 간이었지만 주민들은 지친 기색 없이 이메일로 일정을 공유했다.      


책에 실린, 마을 사람들의 축제 준비 사진은 꽤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창고라 할 만한 극장 안에는 몇 개의 널따란 테이블이 있고 사람들은 그 테이블이 곽 차도록 종이와 신문지, 물감 등을 펴놓고 각자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커다란 인형 부속도 보이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깃털이며 술, 너른 박스 종이 같은 게 있는데 한눈에 보기엔 그냥 창고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도 어수선해 보이는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고 모두 저마다의 작업에 열중해 있다.      


마침내 메이데이 축제날,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만든 각양각색의 인형을 들고 마스크를 쓰고 분장을 하며 마을을 행진했다. 야수의 심장 인형 극단이 주민들과 함께 펼치는 퍼레이드는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게 특징이다. 감옥과 같은 크기의 초록색 주민센터를 끌고 가는 주민들이 몰려든 사람들에게 “감옥을 짓기 원하세요?”“주민센터를 짓기 원하세요?”라고 물으면 관객들이 “주민센터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라는 게 재밌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멋진 행사를 이끌어온 사람은 극단의 예술감독 샌디. 샌디는 주민들과 함께 인형을 만들며 사회적 메시지를 보냈고 이 활동은 멕시코, 아프리카, 그리스, 영국, 그리고 한국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 극단이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인형의 재료는 종이.  내게는 인형을 매개로 주민들과 함께 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식으로 사회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그 과정이 모두 새로웠다.     


멕시코 오악사카의 알레브리헤 마을 사포텍 공동체는 마을 주민들 전체가 알레브리헤라고 하는 전통 나무 인형을 만드는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알레브리헤를 만들며 경제적 공동체가 되는 곳으로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게 다가왔다. 저자는 이곳에서 함께 작업하며 동화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소개했고 마을 사람들은 저자의 마을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책에서 전하는 알레브리헤 마을의 분위기는 소박하고 정겨웠다. 인형은 조각과 채색팀으로 나뉘어 만들어지는데 조각을 못하는 사람은 채색을 하고 누군가 실력이 안된다면 잘 할 때까지 다 함께 그저 열심히 가르칠 뿐이다.      


마을 주민들의 이런 따뜻한 공동체 의식은 다른 책에서 읽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공동체 의식 그대로인듯 했다. 아마도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문화 이리라. 사람들이 어울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를 되짚어보고 싶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그 한 부분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겔라게차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40여 부족이 전통 의상을 입고 고유한 화장을 한 채 전통춤을 추는 축제다. 여기 입고 나오는 화려한 옷은 평상시에 입는 옷이라고. 각 부족 주민들은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는단다. 매일 춤추고 축제에 나오면 그 춤을 또 추고... 말 그대로 일상이 축제!     

알레브리헤가 어떤 것인지 찾아봤다. 나무를 이용한 조각이며 섬세한 채색은 과연 일부러 멕시코에 찾아갈 만한 멋진 작품들이었다.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문화기획자로서의 자신을 더 단단히 했을 것이다. 고마운 건 이런 저자가 있었기에 나는 책 한 권 달랑 읽고 마치 연수를 다녀오듯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계절마다 지역마다 많은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어가는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우리네 문화도 소박하고 작은 것에 관심 기울이고 작은 마을에서라도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형식을 갖춰나가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곳이 곧 예술마을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 인터뷰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travel/817052.html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3528&code=13110000&cp=du



남해의 봄날 블로그의 책 소개 http://blog.naver.com/namhaebomnal/22112132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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