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o Jul 19. 2018

3.고대 이집트-죽은 뒤를 대비하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인형 형태는 비너스 상이었다. 돌로 만들어졌던 이 비너스 상들은 대부분 풍만한 가슴과 강조된 엉덩이가 특징으로 대부분 아이를 많이 낳고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원을 담은 조형물이었다.      

 고대 이집트에 들어오면서 인형은 차츰 정교해진다. 지극히 단순했던 인체의 표현에서 더 진화되어 표정이 조금씩 생기는가 하면 의복에 대한 묘사도 훨씬 구체적인 형태로 변하고 세밀하게 머리카락을 표현한 인형도 보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세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이 사후 세계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신념은 인간의 부활에 대한 경건하고도 독특한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 이집트 문화의 전반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삭막한 사막 지대에서 나일 강의 풍요로움에 힘입어 탄생한 이집트 문화는 일찍부터 그들만의 신화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집트의 천지창조 신화에는 남매이자 부부인 오시리스(Osiris) 신과 이시스(Isis) 신이 등장한다. 오시리스 신은 동생이자 악의 상징인 세트(Set)의 계략으로 관 속에 들어간 상태로 나일 강에 던져진 채 죽음을 맞는다. 오시리스는 부인 이시스 신과 세트의 부인이자 오시리스의 동생인 네프티스(Nephtys)의 도움으로 간신히 부활하지만 이때부터 현세를 떠나 내세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오시리스의 부활 신화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에서는 사자가 죽음 이후 신들의 태양선을 타고 가면서부터 겪게 될 일들을 세세하게 규정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외워야 하는 주문들을 장황하게 써놓고 있다.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오시리스(Osiris)와 42명의 신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 재판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누비스가 죽은 자(死者)의 심장과 깃털을 저울에 매달아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울 때, 즉 생전에 죄를 많이 지었다고 판단될 때는 처벌을 받고 마음이 깃털보다 가벼울 때는 천국으로 가도록 판결을 내린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그림 오른쪽)


 천국에는 죽은 자가 생전에 즐겼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있다. 친구와 가족, 심지어 좋아하는 나무와 반려동물들까지 그대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반긴다고 여겨졌다. 천국에 가게 된 사자는 다시 부활해서 백만 년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생전에 사악한 말과 행동을 했다면 심판의 자리에 지키고 있는 괴물 암무트(Ammut)가 사자의 심장을 먹어치우는 벌을 받게 된다. 

                           

고대 이집트의 주걱 인형

 인형들도 사후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집트인들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집트 중 왕국 시기이던 B.C. 2040 년부터 B.C. 1991년까지 이집트에서는 주걱 인형(paddle doll)이 등장했다. 주걱 인형은 죽은 사람의 무덤에 부장되는 용도로 쓰였고 주로 여자들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인형이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신을 형상화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걱 인형은 주로 나무나 점토로 만들어졌다. 편평하고 납작한 널빤지 형태로 흡사 주걱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도 주걱 인형이다.      

 주걱 인형은 납작한 널빤지에 팔과 다리가 따로 없다. 표현은 정교해져서 우리가 지금 익숙한 인형의 형태에 보다 가까워진다.  얼굴이 작고 목이 길다. 인형의 몸체에는 옷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주걱 인형의 옷 무늬는 실제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을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옷에는 기하학적인 무늬를 즐겨 그리고 있다. 이 기하학적인 무늬는 당시 이집트 교역국이던 누비아(Nubia)에서 유행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주걱 인형의 다리가 없는 것은 행여 죽은 사람의 무덤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형이지만 죽은 자의 옆을 지키는 본분을 충실히 지키는 임무를 충실히 하도록 만들어진 형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머리카락의 표현. 주걱 인형은 전체적으로 옷 무늬와 머리 모양의 표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주걱 인형들은 가운데 부분이 빈 작은 흙구슬들을 실에 꿴 채 정교하게 이어 붙여서 사람의 땋은 머리카락 모양을 그대로 흉내 냈다. 돌에 머리 모양을 새겨 넣었던 것에 비해 머리카락을 아예 따로 만들어서 입체감과 양감을 살렸다.     


 주걱 인형은 어깨나 상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둥글고 풍만하게 표현되는 특징을 가진다. 어깨는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고 동그랗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 둥근 곡선의 아래쪽, 인형의 맨 아랫부분에는 역삼각형의 무늬 속에 여성의 생식기가 구체적으로, 정성스레 그려져 있다. 이 삼각형의 바로 윗부분으로는 겉옷의 장식과 무늬가 그려져 있음에도 인형이 아랫부분에 와서는 생식기를 그려 넣은 것은, 인형 전체적으로 그리 조화로워 보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풍성한 주걱인형

 멀쩡한 겉옷을 입고 치마를 들어 올린 느낌마저 주는데 이를 두고 옛날 아프리카에서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여성이 치마를 들어 올리던 풍습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주걱 인형에서 보이는 이 여성 생식기의 강조에 대한 해석이 세부적으로 다를 수는 있겠으나 어느 편이 됐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던 구석기시대 어머니 여신에의 숭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걱 인형에는 장신구와 부적이 종종 새겨졌다. 이집트 다른 문화 전반에서 그러하듯 내세에서 신의 보호를 염원한 흔적이다. 이 인형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장신구는 메나트(menat)다.  작은 구슬들을 알알이 꿰어 편평한 반원형으로 된 목걸이 모양의 장신구 메나트는 행복과 모성, 여성성을 상징하는 이집트 여신 하토르(Hathor)의 상징이다. 행운을 상징하며 사자(死者)를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쓰인다. 주걱 인형에서처럼 여성에게 쓰일 때는 다산과 건강을 기원하는 반면 남성에게 쓰일 때는 정력을 기원한다.     


 주걱 인형은 발굴 초기 사람의 모양에 가까운 형태 때문에 장난감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형에 대한 연구가 거듭될수록 여기에 다산과 성적 상징을 부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 주걱 인형을 여성의 무덤에 부장함으로써 그녀가 내세에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도록 기원했던 것이다.   이집트 여신 타와레(Tawaret)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주걱 인형도 있다. 타와레 여신은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을 돌보고 임신을 관장하던 신이었다.      


 신왕국 시대이던 1570년께 이집트에서는 우샤브티(ushabti), 혹은 샤브티(shabti) 인형이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이 나타날 정도로 대중화된 우샤브티 인형에도 고대 이집트인들의 독특한 세계관이 엿보인다. 우샤브티는 주걱 인형에 비해서도 훨씬 구체적인 임무를 띠고 있는 인형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공동체에서의 노동을 중요시 했다. 스스로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일’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위해서도 일을 해야 했다. ‘마트(Ma'at)’라는 이집트 정의의 여신은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데에도 이러한 가치관의 영향이 크다.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 장인과 기술자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이 필요했는데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노동을 제공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박한 모양의 우샤브티

 노동을 제공할 수 없을 때에는 조건부로 친구나 친척, 혹은 다른 일꾼이 그 일을 대신하곤 했다.  ‘우샤브티’ 인형은 사후세계에서 바로 그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의 기능을 한다.  이집트어로 ‘우샤브티’는 ‘대답하는 사람(answerer)’이란 뜻이다. 우샤브티 인형은 남자 혹은 여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주걱 인형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의 무덤에서 발견된다. 이집트 신왕조 시절(B. C. 1570~1069)에는 나무와 흙으로, 나중에는 세라믹 재료로 만들어진다.     


 공동체를 위한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집트 문화의 영향으로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자를 관장하는 신, 오시리스가 사후 세계에서도 사람들에게 ‘공공의 일’을 주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시리스가 특정한 일을 위해 죽은 사람을 부를 때 이 우샤브티 인형이 대답하고 일을 할 것으로 믿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 그리고 사후세계에 가는 길에 대한 안내는 촘촘하고 세밀하다. 이집트인의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를 담은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 그 사람의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를 담은 것처럼 각각의 우샤브티에게도 할 일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우샤브티마다 그 우샤브티가 해야 할 일이 새겨져 있고 우샤브티의 모양도 이 일에 따라 만들어졌다. 사후세계에서 해야 할 일에 따라서 바구니나 호미, 괭이, 곡괭이들을 들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우샤브티를 사고팔았다고 한다.     


 재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우샤브티를 많이 살 수 있었다. 우샤브티의 정교함 정도와 개수가 그 우샤브티를 묻은 사자의 재력과 비례했다. 가난해서 우샤브티가 하나도 없는 무덤도 있고 반대로 1년 365일 자신의 일을 대신할 우샤브티가 나온 무덤도 있다. 람세스(Ramesses) 2세의 부친 세티(Seti) 1세의 무덤에서는 무려 700개가 넘는 우샤브티가 나왔다.     


 재력에 따라 우샤브티의 개수가 달라지는 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인데 고대 이집트 사회의 흥미로운 점은 신의 아들이라 할 왕도 우샤브티가 있었다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는 천하를 호령하고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지던 왕도 사후세계에서는 오시리스 신이 ‘시키는’ 일을 할 준비를 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세에서는 파라오를 섬기고 저승 세계에서는 오시리스(Osiris) 신을 모셔야 한다. <이집트 사자의 서>는 각 주문마다 오시리스를 찬양하고 있다.  우샤브티는 인간과 함께 묻힌 인형이면서 인간의 임무가 그대로 부여되고 그 역할도 세세하게 규정된 점이 이채롭다. 사자가 죽어서 지나가야 할 관문, 그리고 그 관문 앞에서 외워야 할 주문은 물론 사후 세계의 단계들을 자세히 기록한 <이집트 사자의 서> 6장은 아예 ‘인간을 위해 일하는 우샤브티를 만들기 위한 주문’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우샤브티

 ‘내세에서 (사자가) 밭을 갈거나, 호수에 물을 채우거나 모래를 퍼 나르는 일을 해야 한다고 선포되면 모든 우샤브티를 없애버릴 것입니다.’라고 주문을 외우면 우샤브티가 그 이름 그대로 나서서 ‘내가 기꺼이 그 일들을 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부를 때마다 여기에 있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사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게 된다.


 사자를 닮은 미라처럼 만들어진 우샤브티의 역할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B.C. 1069~B.C. 747년께는  한 손에 ‘채찍’을 든 우샤브티도 발견된다. 다른 우샤브티를 관리, 감독하는 ‘감독’ 우샤브티가 생겨난 것이다.  아마도 이 시기 우샤브티 인형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처음엔 ‘대답하는 자’로서 사자를 대신하는 역할이 강조됐던 우샤브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기보다 그저 일을 하는 ‘노예’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우샤브티에 대한 관념이 ‘대신 일을 해주는 이’에서 ‘노예’로 바뀌면서 나타난 인형인 감독 우샤브티 인 셈이다.      

<이집트 사자의 서>의 삽화. 가운데에 영혼의 무게를 재고 있는 아누비스 신이 보인다.

 이 감독 우샤브티들은 10개의 우샤브티에 하나씩 할당되었다. 30개의 우샤브티가 있는 무덤에 3개의 우샤브티 감독 우샤브티가 생겨났다. 365개의 우샤브티가 있는 무덤에는 36개의 감독 우샤브티가 있었다.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풍부한 신들의 이야기가 있던 이집트, 사후 세계에 대한 가치관이 남달랐던 이집트에서 인형들이 이처럼 죽은 사람의 곁을, 마치 산 사람 곁을 지키듯 지켜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비너스-최초의 인형 이상의 경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