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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Jul 18. 2018

2.비너스-최초의 인형 이상의 경이

인형의 시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견해가 있다.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주걱 모양의 인형(paddle doll)이 인형의 시작이라고도 하고 역시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우샤브티(ushabti)가 인형의 시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후기 구석기시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를 '최초의 인형'으로 꼽기도 한다. '인형'이 사람 모양의 형상을 일컫다 보니 이 '인형'의 정의  혹은 기준을 명확하게 나누기 어려운 데서 비롯된 차이라 하겠다.


기원전 4만 년에서 신석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기원전 1만 년까지의 시기에 유럽의 많은 지역(프랑스에서 시베리아), 일부 아시아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 방식이나 몇 개를 제외하고는 10cm 내외이거나 더 작은 크기까지 놀랍게도 비슷한 비너스 상들이 200개 이상 발견됐다.  (심지어 수십만 년 전인 전기 구석기시대에도 비너스 상이 발견된다. 다만 전기 구석기시대의 비너스 상은 정교한 인체의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수만 년이라는 긴 시간, 유럽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했을까. 사람들은 왜 이 기간 집중적으로 비너스 상을 만든 것일까.


과장된 커다란 가슴과 풍만한 배에 엉덩이, 위로 갈수록 그리고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진 마름모 모양을 하고 있다. 게다가 섬세하면서도 공들여 표현된 가슴과 배, 엉덩이와 달리 얼굴이나 팔과 다리는 거의 없다. 임신한 여성으로 보일 만큼 대부분의 인형은 배가 나와 있다. 이 모양이 마치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 풍요의 여신 비너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비너스 상'이다. 


비너스 상은 부드러운 종류의 돌, 동물의 뼈, 코끼리 상아, 혹은 흙 등의 다양한 종류로 만들어졌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비너스 상은 독일 홀레 펠스(Hohle Fels)의 비너스로 기원전 38,000년~35,000년 전에 매머드 상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손안에 들어오고도 넉넉할 이 비너스의 키는 6cm. 가슴이 상반신의 거의 전체를 차지할 만큼 강조되어 있는 것만큼이나 하반신에서는 음부가 정교하면서도 도드라지게 강조되어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가슴과 음부가 거의 전부인 비너스 상이다.  특이하게도 머리 부분은 고리 형태로 되어 있어 그 용도가 어딘가 벽에 걸어두거나 펜던트 용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는다.  

홀레 펠스 비너스

기원전 28,000~25,000년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에 와서 비너스 상은 비로소 보다 완전한 형태의 인체를 표현하면서 그 예술적 성취도 높였다. '비너스'란, 후대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 빌렌도르프 비너스에 이르러서야 더 어울린다고 할까.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11cm 크기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역시 과장된 풍만한 가슴과 배를 가지고 있다. 얼굴은 없지만 머리 부분이 조각되어 있고 발은 없지만 다리의 표현이 꽤 정교하다.

빌렌도르프 비너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는 신성한 여신의 상징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비너스를 뒤덮은 붉은색 황토가 여성의 월경과 탄생의 신비로운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쓰여왔다. 홀레 펠스 비너스에 비해 작아진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음부는 베시카 피시스(Vesica Piscis : 연결된 두 개의 원이 겹쳐진 부분을 그린 양 끝이 뾰족한 타원형. '물고기 부레'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여성 자궁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의 로셀 (Laussel) 비너스는 기원전 23,000~20,000년 께로 추정되는 데 다른 비너스 상에 비해서는 꽤 큰 43cm의 높이에 벽면에 부조된 형태를 띤다. 로셀 비너스 상이 발견된 곳은 석기시대 의식이 치러졌던 곳이기도 해서 로셀 비너스 상이 특정한 의례에 필요했었음을 유추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로셀 비너스 역시 풍요로운 생산의 기원이 느껴지는 상징들이 많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붉은 황토로 칠해졌다. 다른 비너스 상에 비해 한층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이 나타난다. 


로셀 비너스는 오른손에 짐승의 뿔을 들고 있고  가슴은 풍만하다. 임신했음을 암시하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 다른 비너스들에 비해 팔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왼손이 배 위에 조심스럽게 얹혀 있다. 역시 표정은 없지만 고개를 한쪽 옆으로 돌려 이 뿔을 지그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로셀 비너스가 들고 있는 이 뿔에는 달과 여성 월경의 신비를 상징하는 13개의 선이 표시되어 있다. 비너스 전반에 나타나는 풍요로운 생산에 대한 기원이 절실히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로셀 비너스


기원전 23,000년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레스푸그(Lespubue) 비너스는 매머드 상아로 만들어진 15cm 높이의 상. 다른 비너스에 비해 가슴에 대한 강조가 뚜렷하다. 다른 비너스들이 가슴과 복부 및 음부를 함께 강조했다면 레스푸그 비너스는 유독 비정상적으로 큰 가슴을 몸의 중간에 두고 있다. 양 팔이 이 가슴에 얹혀 있다. 언제나 아이들에게(인류에게) 젖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역시 표정이 생략되어 있지만 살짝 아래를 향한 고개는 자신의 젖을 먹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스푸그 비너스 복제품(레스푸그 비너스는 발굴 과정에서 가슴 부분에 손상을 입었다)


최초의 인형이 무엇일까 라는 탐색에서 시작됐지만 이 시기에 광범위하게 나타난 비너스 상들에 대해서 알아가다 보면 '다산과 풍요의 기원을 상징한다'는 해석 이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신비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 비너스 상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라는 점에서 구석기시대 인류는 이 상들을 이동 중에도 가지고 다녔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는다. 워낙 오래전이라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라고 하지만 당시 인류는 절박하게 이 비너스 상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퍼즐을 끼워 맞출 단서가 없지는 않다. 구석기시대 후기에 인류 최대의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300만 년 동안 이뤄졌던 빙하기 중 가장 추운 시기가 구석기시대 후기였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했다. 인류를 낳고 먹이는 여성의 몸은 그래서 더 신성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인류 생존에 대한 간절하고도 절박한 기원은 이렇게 '여신'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인형의 시작에 대한 기준이 엇갈린다 해도 이렇듯 인형의 한 시작으로 보이는 부분이 간절하고도 절박한, 그래서 꽤 묵직한 기원에서 비롯됐다는 부분은 인형과 인간의 관계에서 꽤나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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