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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Apr 26. 2020

화 좀 더 낼 걸

"아저씨 지금, 제 발 밟으셨어요!"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산 것  / 내 뜻대로 살 걸  
    쉬지 않고 너무 열심히 일만 했던 것 / 일 좀 덜 할 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 화 좀 더 낼 걸  
    친구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 / 친구들 챙길 걸  
    변화가 두려워 즐기지 못한 것 / 도전하며 살 걸

  

 -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 영국 가디언지, 2012-



화내면 지는 거다.



누구나 한 번쯤 ‘화내면 지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분을 삭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 앞에서는 화 한번 내지 않는 유순한 사람들이 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일까?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겉으로는 매사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호기롭게 코웃음을 치거나 세상만사를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상대방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내상을 입는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진짜 이기는 싸움이 되려면 화를 내는 ‘행동’만 참을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감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J는 평소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생일날 미역국을 미역조림으로 만든 남편에게 감동해서 눈물을 펑펑 쏟고, 누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면 늘 방청객 모드로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누구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된다. 게다가 TV에서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후원계좌가 나오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휴대폰부터 찾기 일쑤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 표현에 익숙해 보이는 그녀에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유독 ‘화’는 두 번 세 번 생각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그때마다 그녀의 속은 화(火)로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참으면서 감정을 ‘관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착각은 화를 내는 것이 미숙한 행동이라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남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욕하면서 자신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느라 애를 쓰기도 한다. 심리학자이자 상담치료전문의인 레스 카터 Les Carter박사는 그의 저서 <분노로부터의 자유>에서 ‘분노는 개인의 가치가 침해당할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나를 알아달라는 호소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함부로 대하면 누구든 화가 난다. 이것은 화를 내는 사람이 예민하거나 유별나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도 아닌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세상에 표현하면 절대 안되는 나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정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고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데, 표현해도 되는 ‘좋은 것’과 표현하면 안되는 ‘나쁜 것’을 임의로 구분해 놓으면 생각의 범위가 제한된다. 게다가 이런 잘못된 이분법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예를들어, 화를 내는 사람과는 무조건 멀리하겠다고 다짐하거나 누군가 화를 내면 원인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화내는 행동 자체를 문제삼고 소통을 차단해 버리기도 한다. 자녀에게 ‘화’는 나쁜 것이니 절대로 표현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자녀를 불행한 ‘애 어른’으로 만든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습관은 필연적으로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지지만 그 때조차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하겠다고 다짐하며 극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화’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꺼지는 ‘불’과 다르다. 억눌린 ‘화’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마침내는 자신을 망가뜨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병’은 이마에 흰 띠를 두르고 누워있는 무기력한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화병 Hwa-byung’을 최초로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정립한 이시형 박사는 ‘화병’을 ‘화를 참지 못하는 분노 증후군’이라고 설명한다. 감정을 억눌렀다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화살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기도 한다. 손목에 자해하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리스트컷 증후군Wrist cutting syndrome’은 화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청소년과 어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처럼 ‘화’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폭발한다.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화'는 나쁜 감정이라는 오해 때문에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결국 쌓인 감정이 상대와 나의 연결고리를 모두 태워버리고 그 관계는 새드 앤딩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무조건 긍정적인 말로 감정을 포장하는 것을 멈추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관계를 살리는 진짜 감정관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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