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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Apr 15. 2020

인정받고 싶지만
칭찬은 불편한 사람들

대단한 나르시시스트와 소심한 나르시시스트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 속의 인물 ‘나르시스’에서 따온 말이다. 흔히 ‘나르시스’를 ‘자기애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파브리스 미달은 그를 가리켜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몰랐던 미운 오리 새끼’라고 말했다. 신화에서 나르시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일찍 죽는다는 예언을 듣고 온 강물에 이끼를 덮어버린다. 그래서 나르시스는 청년이 될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몰랐기 때문에 주변의 찬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요정들의 구애를 무시한 대가로 나르시스는 저주를 받아 어느날 우연히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는 예언대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짧은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누구나 내 안의 나르시스를 품고산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면 주변에서 아무리 좋게 말해주어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지못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랑받을만한 존재로 꾸며내어 그 모습에 빠져들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 Narcissism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따라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나는 대단해!”라고 겉으로 과시하는 ‘외현적 자기애’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대단한데...’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내현적 자기애’이다. 전자의 경우, 겉보기에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속으로는 타인의 인정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자존심을 지탱하려고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후자는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대신 주변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내세우려고 한다.   



“나는 대단해!”라고 겉으로 과시하는 ‘외현적 자기애 overt narcissism

‘나는 대단한데...’ 하고 속으로 되뇌는 ‘내현적 자기애 covert narcissism 



최근 연구에서는 이 구분을 좀 더 세분화하기도 하는데, 나르시시즘이 악성으로 발전하면 사람들을 조종하여 자신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고 남들을 괴롭히면서 우월감을 느끼거나 malignant narcissism 반대로 이타주의자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자신은 세상을 돕는 대단한 사람임을 과시하기도 한다 communal narcissism. 불쌍한 유기견을 거두어 키우던 착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동물학대로 신고를 당하거나 집안일은 뒷전이면서 자원봉사센터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sns에서 온통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사랑스러워 어쩔줄 모르는 것일까? 그들의 계정에 업로드된 이미지는 댓글과 공감클릭을 통해 그들의 진짜 모습이 된다. 이 때 다른 사람의 역할은 잘 꾸며진 모습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이들에게 sns는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인정욕구를 채워주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일방적인 자기표현은 현대인의 공감력을 떨어트리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sns가 대유행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의 자기중심성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사람들은 누군가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부풀릴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상대방을 들러리로 세우기도 하는데 이 때도 역시 다른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계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것은 상대와 의미 있는 관계로 연결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와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우리’로 연결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언제나 혼자서도 충분해 보이는 사람과는 관계 맺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항상 자신을 상냥하게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상대방과 특별한 관계가 된 것 같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의 역할이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그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 떠나버린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서도 외롭다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과다출혈로 위중한 환자가 발생하면 장기 위로 혈액을 쏟아붓듯 수혈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존재가 사라져버릴 것은 사람들에게 sns에서 쏟아지는 ‘좋아요’와 ‘댓글’은 위태롭게 뛰는 심장에 혈액을 퍼붓는 것과도 같다.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끊임없이 ‘인정’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 뒤로 이런 응급상황을 매 순간 겪으려니 이들이 관계에서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자존감 과다출혈을 겪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라는 따끔한 충고보다는 따듯한 위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https://brunch.co.kr/@jinon/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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