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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Aug 29. 2020

'화'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상처입은 애 어른'의 이야기



뜨거운 것에 손이 닿으면 ‘앗 뜨거워’하고 바로 손을 떼는 것처럼 약한 감정을 건드리면 감정의 반사신경이 곧바로 반응한다. 그것이 ‘화’다. 그러다 보니 화가 나면 이성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감정에 휘둘려 자신도 모르는 행동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경영사상가인 다니엘골먼Daniel Goleman은 이러한 현상을 '편도체 납치 Amygdala Hijack'이론으로 설명한다. 위험신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 뇌는 잠시 '본능의 뇌'인 편도체에 생각의 주도권을 내어주는데 그때부터 모든 행동은 본능을 따르며 이성을 관장하는 뇌는 잠시 통제권을 잃는다. 그래서 화가 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런 말도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감정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제대로 표현하면 상황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반사적으로 폭발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화내는 것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실제로 극단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부의 경우에 편도체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약물을 투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화가 치미는 순간, 잠시 멈추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시간은 단 3초다. 3초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잠시 통제권을 잃었던 이성의 뇌를 가만히 다시 움직여 보라. 속이 화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잠시 멈춤’.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대신에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셔보라. 생각이 차분해 지는 것을 즉시 경험할 수 있다.




지금,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셔보라. 







사람들은 저마다 멈춤의 시간을 버티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욱 할 때 1부터 100까지 숫자 세기’, ‘벽지 무늬의 십자 배열 분석하기’, ‘부장님 책상위의 은단 알갱이 개수 세기’, ‘보고서 한자의 획수 세기’, ‘맥박수 세어보기’, ’웃기는 상상하기’ 등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보호 본능을 발휘한다. 말 그대로 뇌가 분노로 폭발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들이다.


여기에 좀 더 의식적인 노력을 더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감정을 관리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이성의 뇌를 자극시켜 납치당한 주의력을 되찾는 원리다. 심리학에서는 ‘감정라벨링Emotion labeling’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로 감정을 정의하기위해 뇌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하면 이성의 뇌 ‘전전두엽’이 활성화 되면서 동시에 편도체의 반응은 줄어든다. 그 사이에 우리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여지를 얻는것이다. 


‘화가 나’

‘부끄럽다.’

‘절망스러워.’



감정을 들여다보며 잠시 멈추는 것은 아예 감정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눌러참는 것과는 다르다. ‘많이 속상했구나’ 한 마디면 펑펑 울고 털어버렸을 것을, 쓸데 없이 울지 말라는 핀잔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영영 ‘상처입은 애 어른’을 가슴속에 담고 산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알아주지 못해서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차곡 차곡 쌓아두게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조언이 추상적이어서 실천하기 어려웠다면 지금 느끼는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고 그 감정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점수를 매겨보라. 객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관찰할 때 생각의 여유가 생긴다.



나의 감정 : 
감정 점수 :  1    2    3    4    5    6    7    8    9    10



EX) 지금 화가 났구나. 나의 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10점이야.





감정의 동물인 인간은 본능대로 살면 당연히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의식적인 연습이 더해지면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진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러한 응급조치는 다음 단계 '제대로 화내기'를 위한 준비 운동이라는 사실이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근육이 뭉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아프다고 엄살을 피웠더니 트레이너 선생님이 허벅지 근육을 죽지않을만큼 세게 눌렀다. 다시는 엄살을 피우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팔다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마사지 아닙니다. 응급조치 해 드린거에요. 바로 운동 시작 하세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헬스장 진상 아줌마가 된 것을 대가로 확실한 ‘화풀기의 원리’를 발견했다. 화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화를 누그러뜨리는 응급조치 덕분에 이성의 뇌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 핵심이다. '화'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다. 평소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힘들었더라도 '화'의 도움을 받으면 평소보다 더 단호하게 말 할 수 있다. 은단 알갱이를 세면서 화가 누그러졌다고 안도하며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차분한 이성의 뇌로 분명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화를 내는 이유는 상처받은 감정을 되갚아주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화’로 공격하면 상대는 즉시 방어체계에 돌입하여 맞받아치기를 준비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선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이 생긴다. 이처럼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나 전달법 I-message’이라고 말한다. ‘나 전달법’에는 세가지 필수요소가 있다. 비난하지 않고 상황만을 서술할 것, 그 상황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할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 대화에서는 세가지 요소를 정확하게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원리를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대화에 적용하기 어렵다면 문장을 말하기전에 속으로 ‘나는’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신기하게 뒤따라오는 문장이 저절로 바뀐다. 앞에 나온 J의 사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상황 : 선배는 매번 약속장소에 늦는다. 
 I-message : (저는) 오늘 선배랑 충분히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해요.
 you-message : 선배가 늦으니까 늘 얘기할 시간이 부족해요. 


* 나 전달법의 3요소  

1.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2.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하기
3. 그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 솔직하게 표현하기



‘불()’과 ‘화()’가 같은 어원을 갖는 것은 정말 놀라운 동시성이다. 한순간에 온 세상을 잿더미로 만드는 불처럼 앞 뒤 재지 않는 감정폭발은 지금껏 관계에서 지켜온 모든 규칙을 깨뜨리고 돌아올 수 없는 지경으로 관계를 내 몬다. 반면 유리를 만드는 장인의 불은 여차하면 깨지는 유리잔을 조형하는 데 쓰인다. 여기에는 장인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처럼 관계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으로 다스린 화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서로를 잘 이해하도록 돕는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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