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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사람이 화도 잘 낸다고 했는데, 반대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솔직한 것일까? 대답하기에 앞서 단순히 감정적인 것과 감정 감수성이 높은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미처 알아채지 못해서 화부터 내는 것은 단지 감정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감정적인 사람은 오히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아는 유일한 방법은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나는 감정의 원인을 찾으려면 역설적이게도 ‘화’를 내 보는 수밖에 없다. 솔직한 사람이 화도 잘 내고, 제대로 화 내는 사람은 뒤끝이 없다. 여기서 ‘화’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마구 쏟아내거나 큰 소리로 누군가에게 겁주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는 솔직하고 단호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용기다.
‘아야! 아, 전 괜찮아요.’ J는 붐비는 지하철에서 또 발을 밟혔다. 반사적으로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는데 구두를 밟고 선 사람이 적반하장으로 눈을 부라린다. 찍소리할 틈도 없이 지하철을 내려 지인과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매번 늦는 선배가 이번에도 늦으면 정말 한마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약속 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선배는 늘 그렇듯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한마디 하려다가 문득, 카페에서 밀린 일을 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다시 멋쩍게 웃었다.
‘왜 바보같이 제대로 말도 못 했을까?’
‘그때는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 했는데…’
사무실로 호출해놓고 사방팔방 전화를 돌리는 벤처 회사 대표를 기다리며 ‘당신의 벤처는 모험으로 끝날지어다.’라고 속으로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겉으로는 괜찮다며 또 멋쩍게 웃는다. 그러면 여지없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게 화낼 일인가? 에이, 아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표현하지 않는 감정은 원인을 찾지 못한 채로 그저 별것 아닌 일이나 성격이 예민한 탓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러나 이렇게 화를 참는 것은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단호하게 말하지 않으면 다음번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고, 자신은 무턱대고 온화할 것이며, 왠지 모를 불편함을 지금과 똑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카터 박사의 말처럼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성숙하지 못해서 화가 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남들에게 온화하게 구느라 자신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관찰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이전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화는 누군가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가 무너질 때 생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감정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읽고나면 매번 늦는 선배에게 짠 내 나는 아량을 베푸는 대신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나에게는 ‘시간’이라는 가치가 중요하고, 오늘은 선배와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생각한대로 말할 수 있다.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도 충분히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나면 감정을 함께 말하기도 쉬워진다. 여기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더하여 말하면 ‘생각-감정-욕구’의 프레임이 완성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장에서 자세히 이야기 나누려 한다. 어쩌면 상대방은 앞으로도 가끔 약속장소에 늦겠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야말로 한 번쯤 봐주는 진짜 아량을 베풀 수 있게 된다.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한다면 상대방이 일부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상대가 눈치껏 자신을 대해주기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남자의 사연이 올라왔다. 그는 이혼한 뒤에도 아이와 놀아주느라 3년째 주말마다 아내를 만나고 있는데, 매번 아내에게 화가 난다는 것이다. 3주도 아니고 3년을 매주 만나왔다니 아이 핑계 대지 말고 아내에 대한 본인의 마음은 어떤지 솔직히 말해보라고 스님이 물었다. 우물쭈물하던 남편은 그제야 그만한 아내도 없었다고 모기소리를 낸다. 3년째 매주 만나며 여전히 서로에게 화가 나 있었다는 부부는 카터 박사의 말처럼 서로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때 차라리 한쪽에서 내가 아직도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사실은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그런데 당신이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니 섭섭하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수백 명이 앉아있는 강당에서 모기소리는 낼 수 있어도 단 한 사람, 꼭 그 말을 들어야 하는 그 사람 앞에서 솔직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때 필요한 것도 다름 아닌 ‘솔직해지는 용기’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지켜지기 원하는 가치가 있다. 이것은 아무리 융통성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어서 절대로 침해당하고 싶지 않거나 누군가 함부로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화가 치미는 그 지점이 바로 내 감정의 아킬레스건이다. 이것은 각자 타고난 성향이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별 것 아닌 일에 발끈헸다고 후회하고 반성하기전에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이 나쁘면 의도적으로 아킬레스건을 공격하는 상대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감정을 아는 사람은 상황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다. 현명하게 감정을 표현하려면 먼저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침해당하면 불쑥 화가 치미는 감정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을 면밀히 살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화내기’의 기술이다. 거창하게 ‘화 내는 기술이라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 용기를 내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이리 저리 재고 방법을 고민하다가 매번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던가. 용기는 ‘번지점프를 뛰어내리듯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화가 난다는 것은 ‘바로 지금, 네가 한마디 할 상황이야!’ 라고 감정이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화가 나는 상황은 피해야 할 위기가 아니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