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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Nov 17. 2020

'자발적 아웃사이더' 의 탄생

공유관계와 교환관계

J는 유독 단둘이, 혹은 서넛이 모인 자리가 어렵다. 회의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입장을 조율할 때와는 달리,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대기 일쑤였다. 화상으로 영어 수업을 듣는다는 핑계로 혼자 점심을 먹기 시작한 후부터 점심시간을 버티기가 조금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에 서툰 것이 그녀에게는 늘 콤플렉스다.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생각을 털어놓고, 가끔은 동의할 수 없는 의견에도 성의껏 대꾸해야만 하는 일들이 그녀에게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
동료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업무 외의 시간까지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녀는 항상 쾌활한 이미지로 통하다 보니 가끔 자신이 가식적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항상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녀가 관계에 서투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발적 아웃사이더 : 공유관계와 교환관계


요즘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소위‘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0년 4월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2, 30대 성인남녀 5,06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1.8%가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44.0%와 비교할 때, 17.8%p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무려23%p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게다가 응답자의 89.2%가 앞으로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포모족(FOMO fear of missing out)과는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조모족(JOMO joy of missing out)이 늘고있다. 심지어 한편에서는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관계 맺는 방식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클라크(Clark)에 따르면 인간관계는 공유관계와 교환관계로 구분되는데(Clark, 1985), 공유관계communal relationships에서는 서로 상호 의존적이며 정서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된 반면 교환관계exchange relationships는 거래의 공정성을 전제로 관계가 시작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형평성의 원칙이 깨지면 관계도 함께 무너진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는 교환관계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을 공유관계로 확장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방의 좋은 의도를 언젠가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면 모든 관계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형평성을 지키지 못해 관계가 틀어질까 봐 항상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사사건건 이해타산을 따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친밀한 관계 맺기에 서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무리 사회에서 인간의 본능이 공유 관계에 기초했다면 현대사회에서 삶의 방식은 교환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공유관계로 인식되어야 마땅한 친밀한 관계에서조차 자신도 모르게 생활에서 익숙한 거래의 원리를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진심으로 무언가를 나누기 원하는 관계에서는 그 흔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원칙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훨씬 더 잘 작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에 익숙해지려면 형평성의 원칙에 얽매이기보다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가 항상 공유의 원칙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상호작용을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불행을 배우자의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상대방을 더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느 쪽이든 이렇게 불균형한 관계에서는 서로가 불행하다. 결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관계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신체적 번아웃을 경험할 때 무작정 쉬기보다는 적당한 활동을 하는 것이 활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관계의 번아웃도 마찬가지다. 서툴고 번거로워서 관계 맺기를 완전히 포기하기보다는 우리의 타고난 본성인 나눔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기대가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기도 쉬워진다. 하지만 그 상처가 아물면서 관계가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용기내어 갈등에 직면하는 것이 타인과 나를 따뜻한 관계로 이어주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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