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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Mar 14. 2021

관계는 의사소통의 동의어가 아니다.

'확장된 현실'에서의 관계 이야기

https://brunch.co.kr/@jinon/34  이어 씁니다.


팬데믹 여파로 물리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 벌써 일년째다. 그동안 비대면 문화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세상은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공간, '메타버스metaverse'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인터넷이나 SNS환경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메타버스’는 이미 Z세대의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혀가고 있다. <메타버스>의 저자 김상균 교수는 기존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메타버스의 특징을 ‘스파이스(SPICE)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메타버스에서는 모든 경험이 연결되며 Seamlessness, 물리적 접촉 없이도 사회적·공간적 실재감을 느낄 수 있고 Presence, 현실세계와 메타버스의 경험은 연결되며 Interoperability, 여러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활동하면서 Concurrence 자유롭게 거래하는 경제 흐름이 존재한다 Economy.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관계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가상공간에서 ‘안전하게 관계맺기’를 권하기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눈을 마주치고 살을 맞대는 직접적인 만남이 관계를 맺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할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실제 경험은 기술이 구현하는 '실재감'을 느끼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이다. 현재의 기술은 상상력에 크게 의존해야 했던 초기의 VR과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명칭도 이전에는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 이던 것이 지금은 '확장'현실 XR, eXpended Reality로 달라진만큼 현실과 흡사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기술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관계맺기와 분명 다르다. 관계는 일시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다. 현실과 매우 비슷한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여차하면 접속을 차단할 수 있는 관계에서 지속적인 안정감을 얻기는 어렵다. 관계를 통해 끈끈한 유대감과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하면 단순한 의사소통을 관계로 착각하거나 관계가 힘들어질때마다 회피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못들은 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단절을 경험했을 때의 상실감은 또 어떤가?



우리가 '확장된 현실'에 깊고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낭떠러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해상도가 떨어지는 가상현실에서도 주춤거리고, 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에 불과한 증강현실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눈에는 영락없는 외동딸의 재롱으로 보이기도 한다. 경험한 것이 다르면 보고 느끼는 것도 달라진다. 그래서 기술로 구현해 낸 새로운 세상이 진짜 같다고 감탄하기는 쉬워도 '확장된 현실'에서 이전에 제대로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을 습득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관계맺기는 서로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실제로 경험한 뒤에야 그것을 기술로 구현한 '확장된 현실'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된다.



관계를 구성하는 것에는 즐거움이나 행복과 같은 듣기 좋은 말도 있지만, 그 관계를 지켜내려면 헌신이나 배려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재롱을 부리는 아이의 동영상에 랜선이모들이 열광하지만 화면밖에서 아이가 떼를 써도 엄마의 눈에는 사랑이 넘친다. 순간의 행복감이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고 원하는 감정만을 얻으려는 관계는 언제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최근 ‘느슨한 연대’를 핑계삼아 실용적인 이득은 모두 취하면서 관계의 번거로움은 피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 역시 공허한 관계맺기에 스스로를 길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확장된 현실'이 편리한 관계를 부추기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진정한 관계를 경험하기도하고, 최근에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늘고있다. 게다가 이런 고민들에 발맞추어 과학기술은 ‘진짜 세상’이 확장되는 것을 꾸준히 돕고있다. 다만, 변화가 우리 삶에 긍정적으로 적용되려면 직접 경험하여 체득한 관계의 원리를 기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슨한 연대'로 더 많은 사람들과 이어지더라도 여전히 밀도 높은 관계가 우리의 중심을 지탱할 때, 그리고 관계의 원리를 언제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기억해 낼수 있을 때 현실 세계는 비로소 메타버스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메타버스에서 누군가를 만나 의미있는 관계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우선 현실에서 진정한 관를 깊이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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