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하지 말라
3년 전, 회사에 강연자가 찾아왔다.
머리 긴 남자분이었는데 빅데이터의 전문가란다.
당시에는 빅데이터가 화두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매체에서 보았던 유명인사,
가장 뜨거웠던 연사 중의 한분이었기에 빅데이터와 관련된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나 보다 했다.
그런데 음..?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계속 보여주며,
사람들이 왜 이 사진을 올렸는지
이 사진을 올림으로써 자신을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지
SNS를 하는 사람들의 숨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빅데이터라고????
의아했지만 이야기가 흠뻑 빠져들 만큼 매혹적이었고 끌림이 있었다.
이 분은 사람들이 SNS에 올리고 댓글 남기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한다고 한다.
재밌는 관점이었다.
빅데이터는 C언어, 자바 등 이런 언어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올법한
그런 복잡해 보이는 코드로만 보는 건 줄 알았으니깐.
그리고 정작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왜 자신이 그 당시에 그렇게 주목을 받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주목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실 본인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같은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다고.
단지, 빅데이터라는 키워드가 대세를 만들었고 쭉 이야기를 해오던 자신을
'발견해준'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발견되기 위한 콘텐츠의 개발과 누적,
그리고 그것이 발견되기에 적합한 환경이 만나서 대세가 되고 뜬다는 것이었고
그건 누구도 정확히 타이밍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뭔가 이루고 싶고, 지금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걸 하고 싶다면
기본 5년은 두고 움직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올인하지 말고 하던 걸 계속하면서 조금씩 키워나가다 보면
그게 어느새 자라서 좋은 타이밍에 '발견' 된다는 것.
그 이야기가 당시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때, 이전에 그려왔던 것들을 시작한다.
어릴 때 꿈꾸던 만화가를 다시 도전하고자 웹툰을 그려 공모전에 내보기도 했고,
베트남을 좋아해 베트남 문화에 푹 빠져오다가 베트남 관련 유튜브를 열고,
그렇게 하나씩 시작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 콘텐츠를 만들고 크리에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분 말대로 5년을 보고 하자. 그리고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자.
그러면 나도 세상에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1년, 2년.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자리걸음이었다.
베트남 주제의 유튜브는 크지 못한 채, 코로나를 맞이해 문을 닫게 되었고
웹툰 공모전에는 계속 떨어지다가, 모바일 이모티콘에도 도전을 해봤지만 결과는 연이은 낙방이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을 보고 시작했기에 좌절하지 않고, 내가 해볼 수 있는 분야를 계속 시도해보았다.
부동산과 미디어라는 관심사를 가지고 오디오 채널도 만들어 운영하고
취미부자의 특장점을 살려 취미로 부자 되고 취미로 콘텐츠 만드는 유튜브 채널도 파고
또 마케터라는 본업을 살려 온라인 마케팅 클래스를 열고 그렇게 또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크리에이터 여정,
주위에서는 계속되는 도전에 신기해하고, 누군가는 응원을 한다.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오디오채널도
유튜브도
웹툰도
온라인클래스도 해보았으니까.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이것저것 많이 해보았고 하고 있지만
나만의 시그니처가, 대표작이 없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이런 거다.
취미가 뭐예요?
콘텐츠 만드는 거예요.
뭐 만들어요?
이것저것 해요, 유튜브도 오디오도 클래스도.
구독자가 어떻게 돼요?
......
아, 그럼 돈도 많이 버시겠네요?
.......
가장 많이 조회수 나온 거는요?
.........
작고 귀여운 반려 콘텐츠들 여러 마리를 데리고 있는데,
막상 들판에 보낼만한 강한 한 마리가 없는 것이다.
팩트를 폭격해보면, 콘텐츠를 열심히 만드는데 성과가 없는 것.
그렇게 나만의 시그니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킬러 콘텐츠를 갖기 위해 마음 먹고는 4년차를 코앞에 두고 길에 막히게 되었다.
뭘 해야 하지..? 지금 하던 것들을 계속 유지하면서 키워야 할까?
더 나에게 맞을 새로운 것들을 또 시도해봐야 할까?
그런 찰나, 3년 전의 머리 긴 그분의 강연을 다시금 듣게 되었다.
이번엔 책을 쓰셨고, 세상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대처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번엔 사람들의 '후기'를 중심으로 풀어냈고, 역시나 이야기를 쫄깃했고 흡입력이 있었다.
그렇게 강연이 끝이 났고, 질문 타임.
나의 본능이 이끌어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저는 회사원입니다. 그대의 말을 듣고, 3년 전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몰입했고, 많이 만들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어떤 하나도 제대로 크지 못했죠. 그리고 그때 말씀하신 5년이란 시기가 이제 2년이 남았습니다.
저에게 A/S를 혹시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다음에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잠시 주셨던 말로 다시 가볼게요.
먼저, 질문에서 '회사원'이라는 말은 필요가 없는 단어입니다.
회사원인데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어필이 되지
콘텐츠를 보는 사람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리 잘 만들고 외쳐도 사람들은 듣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못 만들어도 찾아와서 보지요.
사람들이 관심있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계속해보세요.
잘하시고 있습니다.
그분 특유의 빠른 말과 명확한 악센트로 그대로 멘트가
가슴에 날아와 꽂혀 따가웠지만,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그냥 했던 것.
주위 사람들이 내 콘텐츠를 보면서 해주지 못한 말이 마음속에서 그려졌다.
"좋은 내용인데, 재미가 없어."
"이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그리고 나는 내가 회사원인데 이렇게 까지 하고 있다는, 아무도 관심 없을 전제를
기본으로 깔고 있었던 것. 콘텐츠를 보는 사람은 이러했을 거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렇게 마상급 (마음의 상처급) 처방을 받고, 콘텐츠를 잠시 쉬기로 한다.
경주마처럼 달리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기로 한 것.
나는 누구지?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내가 이걸 왜 하지?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뭐지?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어떤 이야기지?
그렇게 글도 멈추고, 영상도 멈추고, 그림도 전부 멈춘 채로 한 달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알게 된 것.
내가 잘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 배우는 것, 버티는 것.'
그래 그럼 앞으로 더 크게 상상하고, 더 깊이 배우고, 더 단단히 버티자.
이런 생각을 새기게 된다.
그리고 결심한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기장에 쓰고, 노트에 쓰고
콘텐츠에는 사람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 욕망에 집중을 하자.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4년째를 맞이하게 되고
그분의 A/S로 한번의 정비를 거쳐 다시금 달려보려 한다.
아직 2년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깐.
그리고 언젠가 나만의 브랜드, 콘텐츠를 갖고 자라서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주목할 때
그 때는 그분 강연의 참석자가 아닌,
그분과 함께 파트너로 함께 강단에 서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 머리긴 아저씨 때문에 여기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그렇게 콘텐츠를 꿈꾸는 크리에이터 꿈나무는
내일을 상상하고, 배우고, 버티며
언젠가 세상에 '발견 될' 그 날을 준비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