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과 둔한 사람이 함께 살면 누가 더 힘들까?

by 연구하는 실천가

우리 집 안방에는 시계가 없다. 남편이 시계 초침 소리에 잠을 못 자기 때문이다. 한 때 무음 시계를 두어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는 도통 들리지 않는 소리가 남편 귀에는 그렇게 거슬린다니 나는 이해가 쉽지 않았다. 남편은 소리뿐 아니라 냄새, 촉각, 시각, 미각 등 모든 감각을 총망라해서 예민하다. 이런 예민함이 어떤 위험 신호의 감지나 생활 장면에서 유용할 때도 있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다'라거나 '보일러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와 같은 경우)


그러나 소리에 민감한 남편은 가끔 나에게 크고 작은 섭섭함을 안겨 주었다.


" 내가 회사 기숙사에서 지낼 때, 한 방에 3명이 생활했는데, 한 명은 코를 골고 한 명은 이를 갈아서 그게 너무 힘들었어. 난 결혼하면 이 소음에서 벗어날 줄 알았어. 그래도 자기가 이는 안 갈아서 다행이다."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이 말은 앞으로 내가 겪을 서러움의 서막이었다.

나는 임신과 출산을 겪는 과정에서 몸이 더욱 불었고, 피곤도 쌓이면서 나의 코 고는 소리는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은 더욱 자주 말했다. 나의 코 고는 소리가 심해서 잠을 잘 못 잤다고. (심할 때는 녹음까지 해서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 여행을 가면 코를 곤다는 사실을 꼭 말하고 따로 자라고 당부하였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말대로 다른 사람과 한 방을 쓰게 되면 내가 코를 고니 거실에서 따로 자겠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은 괜찮다고 말렸기 때문에 그냥 한 방에서 같이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내가 생각보다 코를 많이 골지 않는다고 다른 데서는 코 곤다는 말을 미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하면, 남편은 그 사람들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니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내가 코를 곤다는 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남편이 예민해서 더욱 힘들어하는 것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편에게 섭섭한 이유는, 내가 한참 잠을 자고 있을 때 남편이 내 등을 툭툭 치며 옆으로 돌아 누우라고 신호를 보낼 때이다. 그때 나는 나 때문에 또 남편이 잠을 못 이루는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에 얼른 고쳐 눕는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잠결에 남편의 짜증스러운 소리가 들릴 때가 몇 번 있었다. ('에이 정말!', '에휴' 등등)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그럴 때 나는 잠이 확 달아나고 섭섭한 마음에 화가 울컥 올라오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소리에도 잠을 못 자는 남편과 천둥번개가 쳐도 잘 자는 나, 우리 부부의 극명한 차이에도 다른 문제가 거의 없었기에 가정의 평화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남편은 농담 삼아 출장 가면 내 코 고는 소리가 없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할 정도로 적응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의 코골이에 대한 서러움도 옛 추억으로 일단락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바로 엄마의 방에서 울리는 음악소리와 엄마가 주방에서 수시로 밥통을 여는 소리이다. (사실 새벽에 밥통 여는 소리는 몇 년 전부터 남편을 괴롭혔고 지금은 새로 사 드린 AI블루투스 스피커, 일명 크로버가 추가 되어 더 문제이다.)


참 단잠을 자고 있는 새벽녘, 남편은 나를 신경질적으로 툭툭 건드린다.

"엄마 방에 가서 음악 소리 좀 낮추고 와."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소리의 원천을 찾아, 나는 엄마 방으로 가서 소리를 낮추고 돌아온다.

그런데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나도 뾰족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잠이 확 달아나 버렸는데 정작 나의 잠을 깨운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면 섭섭함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타고난 예민함으로 미세하게 들리는 그 소음에 잠 못 드는 어려움모르지는 않지만, 둔한 나도 이렇게 한 번 잠이 깨어버리면 한 동안 잠을 설쳐 하루가 피곤하다는 걸 알기는 하는 걸까?


나는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참고 있던 말을 해 버렸다.

"자기야, 다들 자는 새벽에 음악을 틀어 예민한 당신 잠을 깨우는 엄마와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서 음악 소리를 줄이고 오라고 하는 당신 중에서 누가 더 나빠?"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제일 나쁘네. 혼자 잘 자고."


여러 모로 힘든 장모를 모시고 사는 고마운 남편에게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거 같아 미안해져 버렸다.

그날 이후 남편은 더 이상 새벽에 나를 잘 안 깨운다. 아직까지는.

남편의 예민함과 나의 둔함, 그리고 새벽에 울려 퍼지는 남편만 들리는 미세한 소음을 만들어 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 우리 셋의 행복은 열심히 정답을 찾아 가고 있는 중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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