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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29. 2018

곰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남편은 싸우지 않는다

 추석이 지나면 이혼율이 2배로 올라간다는 뉴스를 추석 전날 남편과 함께 tv로 보았다. 우리는 웃으며 그 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석때 이혼율이 늘어나는 것은 추석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부부의 문제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추석 때 터진 것일 뿐이라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우리는 18년간 손에 꼽을 만큼 싸운 적이 적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서로 목소리를 높였고, 아들은 흔치 않은 풍경에 평소보다 빨리 학교 도서관으로 내달음질 쳤다. 이유는? 말하기 뭐할 정도로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남동생이 우리 집에 오는 시간과 우리가 시누이집에 가는 시간의 연결이 조금 겹치는 문제인데, 그냥 말하면 될 걸 남편은 목소리를 높였고, 나도 기분이 상해서 무슨 소리냐며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냐며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질세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목소리 톤을 비슷하게 유지했다. 별거 아닌 거에 밀리면 안 된다는 싸움의 기본자세로. 

 그리고 몇 시간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르르 풀어졌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불만보다 주변 상황에 대한 불만이 상대를 향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공유하면서. 그리고 부부 사이에 대해서 자만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역시 추석은 같이 있는 시간이 많기도 하지만 양측 가족이 물리는 문제가 많으예민해지기도 하는구나 싶다.


 우리는 참 다르다. 나는 그래서 우리가 싸움 없이 사는 부부가 되었다고 느낀다. 결혼할 때는 우리가 이렇게 다르다는 걸 잘 몰랐다. 우리의 결혼은 만난 지 6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혼 며칠 전까지 남편을 소개해준 친구마저 결혼에 대해 신중해라는 걱정을 나에게 해주었는데, 나는 '결혼해보고 아니면 말지'라는 무지한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의 우려로 인한 나의 불안감을 덮었다.  결혼 후 상상했던 걱정들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고 일어나도 나의 둔함과 남편의 섬세함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우리 부부의 다른 점은 많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1. 나는 텍스트형, 남편은 동영상형 인간이다.

나는 책이나 인터넷 텍스트를 주로 읽는다. 그리고 드라마도 서사적인 것을 좋아한다. 동영상 자료는 일단 거르고 댓글로 대충 추정할 뿐이다. 남편은 책은 거의 읽지 않고  쉴 때 주로 유튜브를 본다. 텔레비전도 동물이나 풍광이 나오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주로 본다.


2. 나는 일상형, 남편은 목표형이다.

 나는 목표가 별로 없다. 그저 하루하루 조용한 일상을 즐긴다.  남편은 항상 목표가 있다. 일도 그러했고, 삶도 그러했다. 예를 들면 젊을 때는 10억 벌기, 지금은 10억은 힘들겠는지 세계 여행이 목표다.


3. 나는 삶 자체의 행복을 추구하고, 남편은 현실적 행복을 추구한다.

 나는 오가닉과 건강에 대한 정보나 소식들에 민감하고 돈을 아끼지 않는다면, 남편은 재테크와 관련된 정보에 민감하고 그곳에 투자한다.


4. 나는 산책을 좋아하고, 남편은 운동과 가무를 좋아한다.

 나는 산책하거나 집에 며칠이든 아무 일 없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모험적인 활동은 고소공포증도 있고 해서 극도로 부담스러워한다. 남편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집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운동은 뭐든 좋아하고 춤, 노래에 소질이 있고 스릴 넘치는 도전들을 즐긴다.


5.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고, 남편은 적당히 관심이 있다.

 나는 내 옷도 잘 안 사고, 남편 옷도 안 사지만, 남편은 자기 옷을 알아서 취향대로 수시로 구입하고, 가까운 곳에 외출할 때에도 뭘 입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나는 항상 입는 옷을 입은 채 부스스한 머리를 묶고 현관에서 먼저 기다린다.


6.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두리뭉실한 인간 관계를 추구하고 남편은 형제끼리도 계산할 것은 계산하는 사람이사람 관계에서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이런 점이 4명의 시누이, 홀시아버지를 둔 나에 대한 주변 지인들의 걱정을 남편이 쿨하게 해결해 주는 면이 다. 나는 시누이의 말과 행동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눈치 없는 사람이고, 그런 것을 조용히 찾아내서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7. 나는 잠자리와 음식, 소리에 민감하지 않아 무취향이 취향인 사람인데, 남편은 모든 것에 예민함을 가득 안고 사는, 손이 많이 가는 자기만의 분명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이 말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느꼈겠지만, 나는 둥글넓적한 체형이고 남편은 호리호리한 체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아들은 이런 나와 남편을 적당히 섞어 닮아서 여우도 곰도 아니지만, 대체로 나의 유전자가 60% 정도로 우위인 여우같은 곰이라 조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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