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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Dec 01. 2018

고2의 삶과 40년 금고형

  "금고가 뭐야?"

밥을 먹으면서 아들은 뉴스에서 '금고형'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물었다.

"음, 징역이 노동을 하면서 감옥살이를 하는 거라면, 금고는 노동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는 형벌이지."

"그래? 그럼, 나도 금고 40년 살고 싶다. 그다음 할머니처럼 집에서 편하게 지내고. "


 나는 순간 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숟가락을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철없는 어린애처럼."

나지막하지만 경직된 나의 목소리에 아들은 얼른 말투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농담인데?"


 대한민국 사람의 인생곡선에서 제법 힘든 시기 중 하나인 고등학교 2학년 후반기를 보내는 치고 아들은 대체로 표정과 말투가 밝고 유쾌한 편이다.  

  "엄마, 공부 별 거 아닌 것 같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성적은 좋은 편이잖아.  이해력이 남들보다 좋은  편인 건가?"

시험 결과가 제법 잘 나온 날 싱글거리며 아들이 하는 말에  나는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들, 그럼 언제부터 열심히 할 예정이지?"

뭔가 열심히 하는 것도 같고, 대충 하는 것도 같은 아들의 애매모호한 모습에 나는 조금 더 다그치지 못하는 나의 성향이 문제인가 싶어 가능한 자극이 되는 말을 아들한테 하려 노력한다.


또 나의 고 2 아들은 의욕은 상위권인데 실천력은 하위권이다. 가히 자신감 과잉이다.

"엄마, 내가 내신으로는 S대가 힘들겠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정시로 갈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순간 나는 먹던 숟가락을 무기로 쓸 뻔하였다.

"굳이 S대를 들먹이지 않아도 네가 내신으로 가기 힘든 대학은 충~분히 많을 거야.  단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S대 이야기하자."


그래서 아들은 대체로 시험이나 대회를 앞두거나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항상 자신만만하지만 결과로  획득한 성취율은 과히 높지 않다.

"엄마, 내가 이번 경시대회에서 일단 입상은 할 거 같고, 최우수를 받을지도 몰라.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어느날 집에 들어오자마자 교내 수학경시대회를 쉽게 쳤다고 자랑하며 말하는 아들에게,

"아들, 일~단 결과 보고 이야기하자."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래 이번에는 아마 결과가 좋을런가 보다.' 생각하며 나도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아들은 집에 들어오며 별거 아니라는 듯 작은 목소리로 재빠르게 말했다.

"엄마, 경시대회 안됐어. 그만 들어가 공부할게."

"어? 어! 그래."

나도  최대한 밝고 자연스럽게 대꾸하며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와서 내 옆 앉아 미주알고주알 떠들던 녀석이 이날은 냉큼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의욕이 없는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파이팅은 넘치는데 뒷심이 부족해서 자꾸 좌절하는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이 무겁다. 내신, 수능, 비교과를 모두 해내야 하는 전쟁 같은 대한민국 입시에 잘 적응하는 척하는 아들의 무한 긍정주의가 아빠의 허세를 닮았나 보다 웃어넘겼는데 요즘은 아들의 이런 모습이 자기 보호 본능처럼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다.  

 오늘, 농담처럼 '40년 금고형을 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그간 아들의 이런저런 말들을 되씹어 보았다. 어쩌면 그동안 밝은 모습 뒤로 말 못 할 입시 스트레스를 나름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을 내가 은연중에 많이 닦달해 왔던 것 같다.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빽빽한 일정의 직장생활과 집에 와서도 녹녹지 않은 집안일을 연속적으로 해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직장에서의 업무나 집안 꼴이 어떠할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휘몰아친 평일의 끝에 찾아오는 금요일 저녁의 휴식은 너무나 달콤해서 이날만큼은 저녁 설거지와 샤워 등을 최대한 미뤄놓고 소소한 게으름을 마구 누린다.  내가 지금 집안일을 하든, 미루었다가 다음날 하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커다란 자유를 느낀다. 그래서 금요일엔 저녁을 대충 먹은 후 초저녁부터 두툼한 이불을 거실로 들고 나와 덮어쓰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보며 뒹굴거릴 때가 많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고된 일상의 피로를 푸는 동시에 꽉 짜인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비로소 탈출한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학교 시험이 끝난 이후  며칠을 빼고는 두어 달씩 오로지 공부와 수업의 수레바퀴를 휴일 없이 감당하며 버텨내는 것이다.  사실 아들은 학원도 안 다니고, 밤 12시 전후로 잠들고, 학교도 가깝고, 주말에는 9시까지 늦잠을 자는 편이라 다른 고 2들에 비해서는 스트레스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틀에 박힌 생활을 주말도 없이 오로지 학교, 집만을 오가는 아들이 오늘 아침 농담이라는 핑계로  '40년 금고형'을 받고 감옥에 갇혀 살고 싶다는 말의 의미가 나에게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아들은 지금 강도높은 노역의 3년짜리 징역형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그 속에는 서울 의대를 보내려는 욕심으로 아이들을 입시의 전쟁터로 내모는 속물적인 어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을 보며 내가 과연 그들과 속마음이 별반 다를까라는 의문이 다.  그래서 가끔 아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엄마, 나 P대학 가게 되면 어떡할 거야?"

예전에는 이 질문에 "할 수 없지. 뭐. 그냥 가야지.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면, 최근엔

"네가 노력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닌 게 요즘 입시제도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대학에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

그때 아들의 표정이 살짝 밝아지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와 사회가 거는 기대의 압박감에 숨 막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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