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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07. 2019

워킹맘의 출장

   1박 2일의 출장을 갈 것인지를 두고 며칠을 고민했다.  


  나에게 있어 「출장 또는 지인과의 여행이란 큰 산을 넘어야 하는 난관처럼 막막한 것이다.  챙겨야 하는 아들도 마음에 걸리지만, 무엇보다 하루 종일 나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안심시키고 삼시 세 끼를 어떻게 챙겨야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 아들은 방학이고, 남편은 큰 일정이 없어서 정시 퇴근을 할 거라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여행이라 생각하고 바람 쐬듯 다녀오라고 하였다.  집과 엄마에게 매여있는 나를 늘 안타까워하는 남편이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다녀오기로 하였다.  자꾸 이런 일 저런 일 걱정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없이도 집은 잘 굴러갈 것이다.


   출장을 하루 앞둔 날, 나는 반찬을 잔뜩 사놓기 위해 가끔 들르던 반찬 가게에 갔다.  하지만, 새해 첫날이라 반찬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반찬을 직접 만들기로 하고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근처  마트에 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두부, 콩, 갈치, 소고기, 홍합, 계란, 꽈리고추, 딸기 등을 집어 들었고, 집에 와서 콩자반, 갈치구이, 두부구이, 소고깃국, 홍합탕, 계란말이, 꽈리고추 멸치 볶음 등등을 오후 내내 만들었다.

   그동안 텅텅 비어 있던 냉장고가 오랜만에 제법 채워졌다.  이것들로 오늘 저녁부터 모레 점심까지 총 여섯 끼를 견뎌야 한다.


  이렇게 반찬을 단단히 준비해 놓고 밥을 평소의 2배의 양으로 해 놓고 나서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장길에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홀로 떠난 출장길은 혼자 여행을 떠난 듯 자유로우면서도 허전한 묘한 기분에 젖어 들게 하였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평소 가보고 싶던 장소인 경주 황룡사지 터에 잠시 들렀다. 난생 처음 나의 의지가 원하는 대로 찾아간 이 곳에서 나는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자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가족과 함께였다면 내 취향 따위는 제쳐놓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 엄마가 갈 수 있는 곳이 우선 순위였을 것이다.  그래서 허허 벌판이라 볼 것도 없으며, 주차장에서 내려서  제법 걸어야 하는  이곳(황룡사지 터)을 나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다행히 준비한 반찬과 밥을 대부분 다 먹은 걸로 봐서 양이 적당했던 것 같다.  몇몇 반찬이 적었다며 불평을 하며 내가 없는 어젯밤이 너무 허전했다는 남편의 너스레 반가운 마음에 귀엽게 받아들여졌다.  내가 없어도 별문제 없이 잘 지낸 가족을 보며 내가 뭐든 다 해주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일지라도 각자의 시간, 각자의 삶이 독립적으로 유지되는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즐거운 긴장감을 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또 기회가 온다면 굳게 마음을 먹고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또는 혼자 훌쩍 떠나는 출장 또는 일탈을 감행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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