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Feb 06. 2019

나는 정말 내 아이를 알고 있는 걸까?

 설이라 시댁 식구들과 모이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들도 대동하고 다. 좁은 거실에 가득 모인 식구들 속에서 또래가 없는 아들이 어색할까 싶어 할머니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갑자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 정말 힘들고 심심했어. 아무 효율도 없는 시간이었어."

 아이는 비효율적인 것을 항상 싫어했다.  나와 남편은 당황해서 말했다.

 " 그랬니? 그럼 이제 데려가지 않을게. 네가 그렇게 불편했는지 몰랐어."

 아이는 그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 왜 내게 모두 공부 잘하라고만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처음 술 먹어본다고 하니까 왜 다 이상하게 보는 거야?"

 " 그건 네가 고3 올라가니까 그런 거고. 처음 술 먹는다는 게 기특하니까 장난으로 그런 거지. 왜 그렇게 민감해?"

 " 내가 말을 더듬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모르지? 난 지난 10년이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아이의 이야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이제 많이 좋아졌잖아. 그리고 아무도 너를 이상하게 생각 안 하니까 편하게 생각해."

 "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고."


  아이의 사춘기 때가 떠올랐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가 반항하고 문 잠그고 말도 안 한다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다른 방향에서 우리를 힘들게 했다. 자신을 질책하는 방향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해서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힘들어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다시 밝아진 아이가 판에 박힌 고등학교 생활을 즐겁게 해내어 대견했었다. 그런 아이는 어제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조용하지만 고통이 느껴지는 그때와 같은 말투는 우리를 긴장시켰다.  그리고 문득 며칠 전 있었던 에피소드도 떠올리게 했다.


 아들은 나의 덕질을 이런저런 분위기로 눈치채고 있었고 내게 보여줄 게 있다며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틀더니, bts의 역사를 정리한 동영상 등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들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신나게 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 너 이런 영상 어떻게 안거야?  고3이?"

고3을 앞둔 아들은 이미 집에서 고3으로 불린다.  아들이 처음에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조금 하더니, 갑자기 덕밍 아웃(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밝히는 것)을 했다.

 " 엄마, 나 사실 작년 초부터 티아라 좋아했어."

 "정말?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 옛날 아이돌이고, 사실 이미지가 안 좋잖아. 그래서 애들이나 엄마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내가 티아라 좋아하는 거 아무도 몰라. "

 

  텔레비전에 가수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나오면 가끔 아들에게 넌 누굴 좋아하냐고 물어보았었다. 그러면, 아들은 '난 아이돌 안 좋아해. 유치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향한 숨겨놓은 열정이 우리 아이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덕질을 보고는 비로소 안심하고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보니 그동안 내가 아는 아들이 아닌 듯 신기했다. 우리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서로 좋아하는 가수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를 이야기하며 '나도 그랬는데'를 연발하며 낄낄대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 왠지 친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남편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고, 우리의 대화는 그대로 멈췄다.

남편은 대충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한 마디 했다.

 " 야, 그거 좋아하면 국가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는데?"

아들과 나는 남편의 엉뚱한 논리에 눈빛을 주고받으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아들이 한 마디 건넸다.

 " 아빠, bts가 남북정상회담 때 공연할지도 모른대요. "

 " 그래? 그럼 bts는 인정할게. "

 남편은 커피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에 큭큭거리며 웃다가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아들, 너 그럼 이때까지 공부한다 그러고 티아라 노래나 영상 본 거야?"

 아들은 움찔하면서 말했다.

 " 작년 초에는 좀 그랬어.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하지만 요즘은 안 그래. 그리고 작년에 성적 올랐잖아."

 " 야, 그거 안 봤으면 더 올랐을 거잖아."

나는 다시 덕후 친구에서 한국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 어쨌든 안돼. 1년만 참고 공부만 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얼른 독서실 가. "


 어제의 일과 며칠 전 일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는 아들과 실제 아들은 얼마나 다른 걸까?

나는 아들을 다 안다고 생각했고, 아들과 소통이 잘 되는 엄마라고 자부했다.  아들은 항상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나는 그걸 이해해 주는 쿨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그동안 보여준 모범적인 모습, 즐거운 모습이 어쩌면 내게 보여주기 위해 지어낸 모습은 아니었을까? 깊이 가라앉아 있는 심연의 마음은 날카롭게 부서져있고, 조각나 있는데 그것을 부모와 소통하기에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공부에 대한 걱정을 듣게 될 것이라 여겼을까? 이해받지 못할 거라 느꼈을까?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열중하고 있는 줄 전혀 몰랐고, 공부만 즐겁게 열심히 하는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덕질을 지켜본 아들이 엄마도 자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느꼈고, 스스로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고 나의 덕질을 응원해 주었다.  말 더듬 때문에 힘들어하던 중학교 시절이 지나고 이제 어느 정도 좋아졌고 토론대회도 나가면서 자신감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의 심연에 숨어있는 희로애락을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어깨, 누군가의 손이 필요할 때 기대어줄, 잡아줄 사람 중 앞부분에 떠오르는 이가 엄마이길 빌어본다.  네가 힘든 걸 표현할 만큼 네게 넓은 가슴을 가진 엄마가 아니었던 것이 미안해, 아들.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맘의 출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