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하다. 라면 먹자.
우린 안돼. 혼자 먹어. 아니 먹지 마. 그냥 자.
같이 먹자. 두 개 끓인다.
거부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고
흔들리는 눈동자는 답을 찾지 못한다.
밤 열 한 시의 라면 냄새는 치명적이다.
다 됐다. 먹자.
냄새의 포로가 된 우리는 전의를 상실하고
식탁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국물은 먹지 않겠다.
두 젓가락만 먹는다.
소리 높여 외치며
포로의 마지막 자존심을 불태웠다.
젓가락이 냄비와 입을 수차례 오간 후
퍼뜩 정신이 들고
냄새를 피해 방으로 줄행랑치는 나.
탈출 못한 아들은 결국 국물에 밥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들.
밤이 되면 출출해지는 남편은 우리의 적이다.
분명 우리의 의지는 약하지 않았다.
출출함을 참지 못하는 남편의 의지가 약할 뿐.
얄궂게도 살의 몫은 나와 아들.
부스스한 얼굴은 라면이 주는 아침 보너스
타고난 체질의 남편은 언제나 마른 체형.
그래서 남편은 우리의 적이다.
다이어트의 적.
배고프기 전에 얼른 자라.
부탁, 아니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