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진출기 또는 탈출기

경주 가는 길

by 연구하는 실천가

남들이 다 하는 일을 남다르게 결심해야만 가능한 소심인으로서 일을 냈다. 나는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소신을 가진 집순이답게 운전 경력 13년이 무색하게 한 번도 오롯이 고속도로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다. 기회도 없었지만 굳이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관외 출장을 굳이 떠안지 않는 내가 경주까지의 출장을 결정한 이유는 꼭 받고 싶은 연수라는 사실과 함께 시외버스와 셔틀버스라는 조건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발하는 날 아침, 내가 차를 가져 나온 이유는 순전히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기 위해서였지 결단코 경주로 직접 운전해서 갈 마음은 거의 없었다.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도로로 나오자 질주 본능이 꿈틀대면서 나의 마음은 고속도로를 향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속도로 진출기가 탈출기가 되는 이야기의 서막이 오르고 말았다.

인터넷에 따르면, 고속도로는 올리는 것과 내리는 것만 잘하면 된다는 말에 따라 (사실 전날 밤까지 '첫 고속도로 운전' 등의 검색어로 고속도로를 잘 달리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나는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인터체인지에서 대구, 경주 쪽 방향으로 잘 올리기 위해 내비게이션과 도로 표지판을 정신없이 번갈아 노려보면서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 성공적으로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 오르자 새로운 세상에 던져진 시골쥐마냥 긴장감이 샘솟아서 핸들을 뽑을 듯이 꽉 잡은 두 손에는 식은땀이 차올랐다. 그래도 전날 밤 열심히 숙지한 인터넷 정보에 따라 일단 저속 차선인 3차선을 달리며 마음의 안정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대로 브레이크를 최대한 안 밟으며 앞 차와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나는 주행 차선인 2차선으로 나의 차를 안착시켰다.


그렇게 정해진 고속도로 규정 속도, 100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잘 달리고 있다고 자신하는 순간, 대다수의 다른 차들이 내 차를 쌩하고 앞질러 가는 것이다. 결국 내 뒤에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내 앞이나 옆에는 화물차나 승합차 몇 대만이 나와 속도를 맞추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분명히 정속도 100을 밟고 가는데 왜 그들은 내가 거슬린다는 듯이 나를 피해 지나쳐 가는 걸까? 첫 경험으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라며 걱정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열심히 달렸다.


눈 앞에 휴게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자 잠깐 들러볼까 고민했지만 아직까지는 뛰는 가슴의 진정을 위해 고속도로를 탈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므로 휴게소 방문은 참기로 하였다. 그렇게 내비게이션에 나와 있는 남은 거리를 수시로 확인하며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믿으며 열심히 달린 결과 분기점을 만나게 되었다. 순간 계속 앞으로 달려야 하나 헷갈렸지만, 오른쪽 도로 위에 경주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고 내비게이션의 요란한 경고음과 도로 바닥 색깔의 도움 등으로 경주 방향으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몇 차례 작은 위기가 있었으나 잘 극복하고 출발한지 1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경주 톨게이트를 통과하였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빠른 나라]에서 빠져나온 엘리스처럼 갑자기 느려진 세상과 정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묘한 희열감이 들기도 하였다. 이상으로, 소심한 집순이의 유난스러운 고속도로 진출, 아니 탈출기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이제 가끔은 내 힘으로 경주에 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웃기는 이야기일까? 뭐든 처음 하는 일에는 과한 고민과 유난함이 뒤따르는 소심한 집순이의 성공기는 앞으로도 계속, 다소 천천히 이어질 것이다.


[사족]
이불을 뒤척이며 며칠을 고민하는 나에게,

" 그냥 차 갖고 가!" 라고 냉정하게 외쳐주신 남편에게 이날 성공의 영광을 돌린다.

이전 13화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