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사는 걸까 살아내는 걸까

by 연구하는 실천가

R

너도 그런 적 있을까?

열심히, 아주 열심히 노력했는데 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질 때 말이야. '그래도 잘했다 의미 있었다' 하며 힘 빠지는 나를 다독이며 한 숨 돌리는데, 또 다른 문제가 뻥하고 터지는 거야.

분명 내 실수는 맞는데, '어떻게 이런 것까지 예상할 수 있지?' 하고 왠지 억울하고 짜증 나는 거야.

동시에 왜 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자책이 되기도 하고,

한편 왜 매뉴얼에도 없는 이 문제가 나에게 터지는 타이밍이었을까 싶기도 할 때 말이야.


R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 맞겠지?

너도 때로는 살아내는 삶도 있는 거지?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는 거겠지?


엄마는 사탕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을 줘도, 이건 물이 아니라고 다른 물을 달라고 하기 일쑤다. 그러면 온갖 물이 등장한다. 정수기 물, 따뜻한 보리차, 사이다, 영양제 탄 물, 커피...

각종 물 종류를 입만 대다가 '왜 이 집엔 물이 없냐' 고 짧게 화내고 끝난다. 밥시간이 되면 국 반 그릇, 밥 두어 숟갈, 생선살 두어 점을 준비한다. 하지만 입에 넣었다 뱉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시중에서 파는 영양 보충용 음료를 한 모금 마시게 하는 게 끝이다.

음식에 대한 감각과 씹는 능력을 잃은 엄마는 그렇게 살아내는 중이다. 그런 엄마는 수시로 죽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처럼 엄마가 보고 싶어서 죽고 싶다고 말하고, 가끔씩 딸을 알아볼 때는 그 딸을 힘들게 하는 자신이 나빠서 죽고 싶다고 한다. 또 자신의 몸이 힘들거나 텅 빈 영혼이 외로울 때는 그동안 지은 죄가 너무 커서 벌을 받는 중이라고 자책한다. 그렇게 엄마에게 삶은 허허롭고, 무의미하며, 벌 받는 것일 뿐이다. 그런 엄마를 어쩌지 못하는 나도 살아내는 삶을 살기는 매한가지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모두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중인지 모른다. 이 세상에 느닷없이 던져진 이후로 많은 시간을 살기보다는 살아내기 바쁜 우리인지 모른다. 온갖 현혹되는 삶의 옷가지를 벗어던진 노년에서야 바로소 밝은 불빛 아래에 서 있는 벌거벗은 나를 마주한 듯 깨달을 뿐.


이전 14화고속도로 진출기 또는 탈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