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 냉면 국수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입맛
'우린 어쩌다 점심을 쫄쫄 굶고서 양산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이 국도를 폭주하게 된 걸까?'
지금 나는 남편의 폭주에 참담한 심정으로 창문 위 안전손잡이를 꽉 붙잡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우리 셋의 서로 다른 입맛, 서로 다른 성격 때문이다.'
나의 소리 없는 외침은 달리는 차창 밖으로 인정사정없이 내팽개쳐지고 있었다.
출발은 분명 화기애애했었다. 늘 그랬듯이 뭘 먹으면 좋을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다만 모두가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을뿐더러 먹으러 갈 만한 곳도 없는 부산 외곽에 사는 게 문제였다. 서로 질문만 하고 응답이 없는 와중에 남편이 '매콤한 막국수가 먹고 싶다'라고 의견을 낸 것이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막국수라는 말이 순간 막장드라마로 들린 것은 그저 나의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남편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었던 우리 셋(엄마는 항상 무응답이시니 정확히 말하면 아들과 나 이렇게 둘)의 무응답은 당연히 긍정적인 신호로 읽혔고, 그것이 비수가 되어 나중에 우리에게 날아올 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서 어느 블로그에서 소개한 집 근처 막국수 집을 찾아냈고, 우리는 그곳을 찾아갔으나 그 집은 현재 존재하지 않았다. (막장드라마의 시작은 이렇게 스릴러였다.) 올라온 리뷰글의 날짜를 보니 작년 초였고 확인전화를 하지 않은 나는 사과를 했다. 이렇게 1차 사건은 작은 에피소드로 일단락되는 듯 하였다. 남편은 조금 기분이 상했으나 애써 마음을 다잡았고, 우린 다시 차를 타고 검색을 했다. 그래서 조금은 멀었지만 인근 지역인 김해에 막국수 집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막국수를 먹으러 떠나는 즐거운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가는 길에 식당으로 전화를 하니, 그쪽에서 답하길 업종을 바꾸고 장소도 이전했다고 한다. (막장드라마의 본격적인 서막이 드디어 올랐다.) 남편은 살짝 짜증 난 목소리로 그냥 냉면이라도 먹자며 자기가 아는 냉면집이 있다고 차량을 돌렸다. 장소가 무려 양산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다시 스릴러) 나는 양산이라는 말에 허기가 급작스럽게 몰려왔고 '그냥 집 근처에 가서 간단히 먹자'라고 모기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그 집 냉면이 맛있다며 가자고 했고 차는 계속 양산을 향해 달렸다. 나는 성격상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한참을 가던 중 냉면 먹으러 가도 되겠냐고 남편이 물었다. 나는 엄마가 냉면을 못 먹으니 엄마와 그 근처 식당에서 대충 먹을 테니, 아들과 같이 먹으라고 말했다. 아들은 그 순간 냉면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각자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차 안 온도는 빙하기가 온 듯 급격히 냉각되었다. 그 순간 남편은 거칠게 차를 돌렸다. 일 년에 두, 세 번 남편이 화를 내는 날이 바로 오늘일 줄이야.
남편은 '집으로 가자'는 짧은 외마디를 창밖으로 내던지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화가 났으므로(나는 배가 고프면 화가 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폭주하는 차 안에서 생각해보니, 사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닌 여러 나쁜 상황이 우연히 겹친 것이다. 그중 하이라이트가 우리 셋(남편, 나, 아들)의 다른 성격 탓이다. 셋다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 아니지만, 특히 나와 아들은 자기주장을 잘 하지 않는다. 그냥 좋을 대로 하자는 주의라,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따르는 편이다. 특히 내가 심한데, 의견이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에 대한 나의 대답의 40%는 '몰라', 40%는 '아무거나', 20% 정도가 나의 의견, 그것도 '~인 것 같다'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말한다. 한마디로 나는 매우 우유부단하다. 아들도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하는 성격이라 누가 뭘 하자고 하면 반대를 잘 안 한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막국수를 먹자고 했을 때 아들과 나는 그 식당 메뉴가 여러 개라는 사실 때문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냉면으로 메뉴가 급선회되자 냉면집에는 다른 메뉴가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되었고, 서로 의견을 말할 타이밍을 놓쳤고 일단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나는 고기를 못 먹는 엄마의 식성이 걱정되었고,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은 다른 메뉴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일단 가서 대충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남편이 확실하게 확인하는 순간 어긋나 버린 식성이 드러난 것인데, 이미 서로 너무 배가 고팠고 너무 멀리 와서 결국 각자 화가 터져 나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냐고?
매콤한 냉면이나 막국수가 먹고 싶었던 남편과 고기를 먹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결코 면을 먹고 싶지 않았던 아들, 일단 엄마가 먹을 수 있으면 뭐든 먹자는 나, 이렇게 4명이 먹은 음식은 국수였다. 그나마 남편은 매콤한 비빔국수를 먹었고, 고기만 아니면 되는 엄마는 물국수를 먹었고, 항상 아무거나인 나는 비빔국수를 먹었지만 면을 먹고 싶지 않았던 아들은 배고픔을 위안삼아 말없이 물국수 곱빼기를 먹었다. 그렇게 여러 곳을 전전하며 점심식사 장소를 헤매던 우리는 바로 집 앞 국숫집에서 각자 분노에 차서 국수 한 그릇씩을 깨끗이 비우고는 조용하고 냉랭한 그리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보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듯 흥미진진한 출발을 보인 막장드라마는 대개 그렇듯이 이렇게 용두사미의 찜찜한 해피앤딩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