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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음에 대하여

by 연구하는 실천가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가 앞으로 나가서 서야 할 때, 나는 제일 앞 가장자리에 얼른 선다. 마음은 뒷자리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싶지만, 그러면 어차피 앞으로 나오라는 카메라맨의 독촉을 들을 것이므로 알아서 제일 앞자리에 재깍 서는 것이다. 그나마 가운데로 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얼른 앞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키가 작아서 불편한 점이 많지는 않지만 소소히 있는데, 예를 들면 우리 집 주방 창문에 내 손이 닿지 않아 열 수가 없다는 것. ( 이건 창문 앞에 떡하니 놓인 김치 냉장고 탓이 크다.) 그리고 일을 늦게 마치고 나 홀로 퇴근할 때 경비 아저씨가 잠가버린 중앙 현관문 위쪽 잠금 고리를 열고자 손을 뻗어도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 교실 칠판의 위쪽부터 판서를 못하고 어정쩡한 높이에 써야 한다는 것. (적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은 듯도 하다. 흑)


중고등학교 때 출석 번호가 키 순으로 매겨지던 시절, 나는 필사적으로 1,2번을 부여받지 않고자 새 학년 첫날 번호를 정하기 위해 키 순으로 줄을 설 때 살짝 발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허리를 폈다. 출석 번호가 1,2번이 되면 매번 줄을 설 때 제일 앞에 서야 해서 조회 시간마다 꼼짝 못 하고 차렷 자세로 서 있어야 하고 내가 제일 작다는 사실을 항상 확인받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7번 이상이 되어서 적어도 교실에서 둘째 줄에 앉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하지만 나는 대개 3번에서 5번 사이에서 번호가 정해졌고, 항상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특혜가 주어졌다.


키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던 10대, 20대 시절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키 큰 남자 친구를 만날 거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다녔다. 내가 현재 나의 남편인 그 당시 남자 친구를 지인들에게 소개했을 때 그들의 첫 반응은 '키가 작은 편이네?"였다. 그 당시 내 눈에는 콩깍지가 씌어서 전혀 작아 보이지 않았던 나의 남편은 그렇게 객관적으로 볼 때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아이가 나를 닮아 키가 작을까 걱정은 했지만, 원래 걱정만 하고 대책은 잘 세우지 않는 나의 성격상 그게 현실이 된 후에야 많은 걱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7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던 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작았지만 자라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훌쩍 클 거라는 나의 안일한 긍정적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병원에서 성장판 검사 후 "그래도 큰 장애 없이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의사의 따뜻한 듯 냉정한 말이 한동안 내 귓가를 쟁쟁 울렸다. 그 말을 함께 듣던 아들은 의외로 담담하게 웃었다. 나는 그런 아들 앞에서 찡그린 얼굴을 할 수 없어 같이 웃었다. 앞으로 키가 작음으로 인해 겪을 생활의 불편함보다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한 슬픔이 더 클까 두려운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또 대책 없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본다. 세상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사고의 진보도 이루어져 왔다. 한 때 뚱뚱한 사람, 대머리인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못생긴 사람 등 외모 비하가 개그의 소재가 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가끔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는 점차 주관적인 외모의 기준을 정해 놓고 평균이라는 허울 속에서 어떤 사람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키일 수도 있고, 몸매일 수도 있고, 남녀에 대한 것일 수도 또 그 무엇일 수도 있다. 한 때 안경을 쓴 여자 아나운서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안경을 쓴 여자 아나운서를 보게 된 것처럼 남자이든, 여자이든, 안경을 쓰든, 화장을 하든 외모가 남다르든 그것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따위의 일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 사람을 보는 색안경이거나 사회적 핸디캡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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