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온다.
책만 읽으면 잠이 온다.
몇 장 남지 않은 이 책을 오늘은 끝내야 하는데.
그래야 일주일째 울리고 있는 연체 알림 문자를 받지 않을 수 있는데.
오늘도 까무룩 잠결에 책을 놓친다.
가능하면 대출일자를 놓치지 않고 제 날짜에 책을 반납하고 싶지만 이처럼 수시로 연체를 하고야 만다. 특히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은 이 책을 이렇게 끝까지 잡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의 결말을 꼭 보고 싶다는 이유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인정머리 없는 책 제목처럼 이 책은 숭고한 생명의 탄생 조차도 마치 물질 덩어리를 다루는 양 발달 과정을 수치로 전하는 차가움으로 접근하더니, 노화로 인한 인간의 변화 과정도 과학적인 통계로 일관하였다. 이렇게 무미건조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한 글이지만, 그 무미건조함이 현실을 더욱 직시하게 하고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어쨌든 이야기가 인간의 탄생으로 시작하였기에 결말에 해당하는 인간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지, 작가가 또 얼마나 신랄하게 표현할지 기대하며 이 재미없지만 신경 쓰이는 책을 끝까지 꾸역꾸역 읽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삶을 무엇이라 정의할지, 또 그 끝은 무엇이라고 말할지 확인하겠다는 의지로.
하지만 나는 책만 읽으면 잠이 온다. 이처럼 건조한 책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책을 두어 장 넘기면 저절로 책을 향해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책은 죄가 없다.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 문제이다.
나는 매일 책을 조금씩 집적거리듯 읽는데, 대부분 자기 직전에 읽는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마무리하면 8시 전후이다. 그리고 나는 책보다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아서 뉴스를 본다. 뉴스가 조금 지루해지면 컴퓨터를 켜고 내일 수업 준비를 하거나 글을 쓰며 띄엄띄엄 뉴스를 본다. 그렇게 수업 준비와 뉴스는 거의 비슷하게 9시 30분쯤 끝난다. 그럼 또 책보다 리모컨을 들고 드라마 채널을 돌린다. 그렇게 11시까지 멍하니 텔레비전을 본다. 11시가 되면 이제 정말 책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책보다 휴대폰을 든다. 아주 잠깐 보겠다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본다. 하지만 조금 보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12시 전후, 침대 머리에 기대어서야 비로소 책을 든다. 그리고 몇 장 읽다 보면 잠이 솔솔 오니 책을 조금 읽을 수밖에 없다. 따뜻한 이불과 편안한 자세는 나를 지적 희열의 세계가 아니라 꿈나라로 인도하는 자동문이다. 결국 책을 덮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꼭 이럴 때 찾아보고 싶은 게 문득 떠올라 잠깐 휴대폰을 본다. 하지만 잠깐 보지 않는다.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또 30분을 보내고, 1시 가까운 시간이 되면 잠이 든다. 텔레비전과 휴대폰에 허비하는 시간에 비하여 책에 들이는 시간은 정말 인색하다. 책 읽는 시간에 대한 죄책감에 내일은 좀 더 이른 시간에 책을 읽으리라 결심해 보지만 이제는 일찍 읽어도 30분 이상 잘 읽지 못한다. 온갖 미디어의 홍수는 나를 활자형 인간에서 전자형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글도 인터넷 텍스트가 더 잘 읽힐 지경이다. 이제 유튜브의 영상 속 자막으로 신분이 하락한 텍스트는 점차 퇴화의 길만 남은 것일까? 그와 함께 인간의 뇌와 감성도 점차 변할 수밖에 없는 건가? 왠지 인간 진화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듯 섬뜩하다.
그래서 책은 죄가 없다. 내용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유튜브와 텔레비전 등 미디어에 빠져 늦은 시간에야 책을 읽는 나의 생활 패턴, 그래서 부족한 잠. 그리고 반짝이는 영상에 길들여진 나의 단편화된 뇌 기능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결국 책을 반납하지 못할 것이다. M도서관 담당자님. 용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