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활자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한 때 전자책의 시작을 소리 높여 외치며 종이는 사라져도 활자는 건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터넷과 활자는 그렇게 상생할 운명이 아니었던 듯하다. 수천 년간 인간의 발전과 시대의 혁신을 이끌어 왔던 종이와 글의 오랜 위상은 21세기가 시작되자 십여 년의 짧은 역사가 무색하게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정보에 지식 권력을 내주고 만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니냐고, 아직 책과 글은 이 시대의 기본적 정보와 지식 축척의 기본축이라고. 그럴지 모른다. 아직도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밤새워 도서관에서는 많은 글들이 읽히고 쓰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한때 책을 좋아했던 소시민에게는 그러하다. 몇 년 전까지 휴일 오전이면 신문 읽기, 휴일 오후는 도서관 나들이, 평일 저녁의 마무리는 독서, 미용실이나 지하철에서는 잡지류를 들고 있던 내 손이 이제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스마트폰을 떠날 줄을 모른다. 그리고 진작에 많은 이들이 유튜브를 노래하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의 번성을 비웃으며 나는 오로지 스마트폰으로 검색엔진을 활용한 뉴스, 브런치, 매거진 보기에 열중했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여가시간에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가장 많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내가 bts 덕후가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 그렇게 나는 이제 활자와 조금씩 이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매일 저녁 읽던 브런치의 글마저 밀린 숙제를 하듯 하루 날 잡아 후다닥 몰아서 읽어내기 급급하다.
학교도서관에는 아이들이 드물게 보인다. 몇몇 앉아 있는 아이들도 만화책이나 화려한 칼라 북에 눈을 빼앗긴 채 활자가 많은 책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이젠 그림과 만화 가득한 책들도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아이들은 이제 심심하다고 책을 읽지 않는다. 독서는 또 하나의 공부일 뿐이다. 동요가 아이들을 떠나고 유아들의 전유물이 된 것처럼, 책도 이제 어린이들의 즐거움 창고가 아니라 상상력 풍부한 유아기 때 잠깐 읽던 행복했던 추억이 되어 버렸다.
교육현장도 다르지 않다. 교사들은 더 이상 칠판 가득 판서를 하지 않는다. 칠판엔 단원과 학습목표만 쓸 뿐 텔레비전 동영상을 보여주며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도 노트에 필기하는 일이 흔치 않다. 교과서에 활동 스티커를 붙이며 지식을 정리한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학점을 따기 위한 도구로써 책과 글은 그 존재 가치를 발할 뿐이다. 아이들의 가슴에 감동적인 책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의 재미나 소공녀의 감동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책은 그저 따분하고 재미없는 구닥다리가 되었다. 글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은 영상을 보조해 주는 수단이자 재치 있는 표현의 댓글 정도로 가볍게 스친다. 이제 뭔가를 알고 싶으면 반짝거리는 금장 테두리의 무거운 백과사전이 아닌, 가벼운 클릭 몇 번의 유튜브를 보는 게 쉽고 빠르다. 그 속의 활자는 화려한 시각 자료를 보조해 주는 수단이자 소리를 낮출 때 필요한 자막, 재치 있는 언어유희 정도의 가치로 전락하였다. 덕분에 전 세계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대략 하나가 되었다.
누구는 말할 것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알기 쉽고 재미있고, 보기 쉬운 것이 좋은 것 아닌가? 덕분에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정보는 접근성이 좋아졌지 않은가? 그리고 세계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지역과 지적 수준 여부와 상관없이 정보와 지식의 평준화에 일조하지 않았는가?
분명 그렇다. 하지만 글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글이 사라지자, 감동이 사라지고 감각이 번성한다. 인간의 무한 상상이 사라지고 파편화된 지식이 범람한다.
사실만 남고 감성은 사라진 시대. 현상만 남고 이상은 잠든 시대가 되지 않았나? 항상 시대에 뒤처진 삶을 살아온 문화지체자답게 어리석은 나는 그렇게 무너지는 글의 위상을 부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