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며칠 뒤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관련 책을 보고 생각에 잠겨봐도 딱 마음에 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선다. 산책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풀어헤치듯 스르륵 풀어진다. 결국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에다 떠오른 생각의 키워드를 급하게 쳐넣고 다시 산책을 이어간다. 이처럼 기획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나의 경우 컴퓨터나 책보다 산책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샤워를 할 때도 유사하게 일어나는데, 산책의 경우 더 빈번하고 확실하다.그뿐 아니다. 복잡한 일이 있을 때 산책을 하다 보면 그 일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고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 보면 이상하게 정리가 쉽게 된다.
따라서 창의적인 업무 능률을 원한다면 직장에서 책상을 치워라. 그리고 산책로를 만들어라.
이것이 내가 우선으로 꼽고 싶은 산책의 힘이다.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오롯이 자연이라는 배경 속에 나를 던지는 힘, 그 다음 나의 속으로 들어가는 힘. 그리고 나와 마주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때로는 외로움일 때도 있고, 자유로움일 때도 있다. 그리움일 수도 있고, 평화로움일 때도 있다. 온갖 상념과의 이별을 통해 얻는 힘이다. 그 속에서 창의성은 새록새록 피어난다.
나에게는 글쓰기도 그러하다. 누군가 말했다. '글쓰기는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정말 그렇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글을 쓰면 오롯이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고, 나의 내면을 쓸어내고 먼지 자옥한 나를 털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 없이 오로지 고독의 공간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나를 명상에 잠기게 하고 결국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산책과 유사하다.
하지만 산책과 글쓰기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산책이 나의 내재된 에너지를 끌어내어 활력을 주는 힘이 있다면, 글쓰기는 내 속의 에너지를 깊이 파고들어 나의 영혼을 고요히 침잠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울할 때는 글쓰기가 더 효과적이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감정이 저만큼 아래로 떨어질 때는 가슴이 흐르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쓴다. 처음에는 문맥도 없이 중구난방 휘갈기듯 써가지만 어느 순간 내밀한 속내를 조금씩 드러내며 말로 다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눈물자국 같은 글자들로 하얀 모니터를 채워간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있던 무언가가 조금 가벼워지면서 가슴 한켠이 비워지는 느낌이다.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내가 글쓰기를 모르던 시기에 스트레스 가득한 날이면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허기진 영혼을 메꾸려 매운 라면 한 그릇에 밥을 말아서 뚝딱 먹어치우거나 과자를 몇 통씩 먹어치우고는 부른 배와 멍한 눈으로 텔레비전 소음 속으로 나를 던졌었다. 그 허망함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키우기 일쑤였다. 이제는 빈 속으로 글쓰기와 마주한다. 그러면 글 속 나의 생각 마디들이 나를 위로하는 진혼곡 같은 주절거림을 나에게 가만히 들려준다.그렇게 내 속을 텅 비우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낀다. 뭔가로 가득채우면 풀릴 줄 알았던 스트레스는 비우니 오히려 풀리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가벼울 때나 머리가 무거우면 산책을 하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나의 영혼이 무거우면 글을 쓴다. 상념에 가득 차 있으면 산책의 발걸음이 무겁고, 기분이 업되어 있으면 글의 깊이가 얕아져 좋지 않다. 그래서 이 둘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나의 에너지의 경향성에 따라 효과가 반대로 나타난다. 이 둘은 이제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중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을 굳이 고르라면 나에게 아직까지는 산책이다. 고로 나는 산책 덕후이며 산책 중독자이다.
이처럼 고독을 즐기는 나는 산책과 글쓰기, 이 둘에 필연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