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아지 해피를 그리워하며
오늘도 어제처럼 오후 6시에 산책을 나갔다. 길 가에 핀 강아지풀은 바람에 몸을 흔들며 자꾸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애를 태운다. 마치 어린 시절 나의 강아지 해피처럼.
내가 열한 두 살 때쯤, 그 시절에 커다란 이층 집에 살던 막내 이모집에서 안고 온 잡종견 해피는 이제 막 눈을 뜬 새끼 중에서도 새끼인 강아지였다. 내 품에 안고 오는 그날 밤, 해피는 어찌나 몸을 떨던지 나는 몇 번이고 해피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계속 고도를 높이며 위 쪽으로, 위 쪽으로 이사 가더니,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 보이는 소위 산동네 마을로 가게 되었을 만큼 가장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다니던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나는 곧 중학교에 갈 거라는 이유로 전학을 하지 않고 먼 길을 걸어, 다니던 초등학교를 계속 다녔고 동생만 이사 간 집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그 당시 사직 종합운동장을 한창 짓던 때였는데 그 넓고 허허벌판인 모래 가득한 공사장을 지나서 나는 학교를 다녀야 했다. 이사로 멀어진 초등학교를 1년 이상 오가며 다닐 때마다 나를 배웅해 주고 기다려줬던 해피가 있어서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었다. 해피가 나와 함께 공사장 주변 흙더미 위를 뛰는 장면은 한 편의 영상이 되어 지금도 내 머리 속에 항상 켜져 있는 느낌이다.
그런 해피를 내가 놓친 것은 순전히 [소년중앙]이라는 잡지 때문이었다. 그 당시 연예인들의 대형 사진과 소식들, 재미있는 만화들이 가득한 이 잡지를 너무 갖고 싶었지만 우리 집은 사줄 만한 형편이 아니었고 친구 집에서 잠깐씩 본 게 다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가 해피를 주면 [소년중앙]을 비롯한 학생잡지를 사준다는 말을 하였고, 나는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그만 그렇게 하겠다고 덥석 말하고 말았다. 엄마를 통해 하얀 운동화 두 켤레와 소년중앙, 보물섬 잡지를 받던 날, 나의 해피는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옆 집을 지나갈 때마다 나를 보고 끙끙 대는 해피를 지켜보는 나에게 옆집 아주머니는 모른 척하고 얼른 지나가라고 무뚝뚝하게 말했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소년중앙]은 해피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외롭던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어떤 풍족한 물질이 아닌 강아지풀 같이 보드라운 꼬리를 한없이 흔들어 대던 해피였던 것이다. 얼마 뒤 해피가 보이지 않아 엄마에게 물어보니,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들었다고 엄마는 덤덤히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끝없는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 내가 부자였던 이모집에서 해피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옆집에 해피를 주지 않았더라면...
내일도 오늘처럼 산책을 나가면, 강아지풀은 해피의 잔망스러운 꼬리처럼 흔들거리며 나를 따라 걸어줄 것이다. 예전처럼 작고 따뜻한 혓바닥으로 내 손등을 부드러이 핥아주지는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