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에는 문학책을 사서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부모님이 몇 권 사주시긴 했는데 주로 [톰소여의 모험] 같은 외국 동화책이나 [강감찬] 같은 위인전 몇 권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문학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어디서 굴러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낡은 한국단편소설집 몇 권을 읽게 되면서였다. 어릴 적 단칸방에서 살 때 겨우 앉을 정도의 키낮은 다락방이 있었는데 그 곳이 오롯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사적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혼자 누워서 그림도 그리고 이런 저런 공상도 하며 뒹굴었었다. 그 단편소설들을 읽은 곳도 거기였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감자> 그리고, 김동리의 <무녀도>,<등신불>이 기억나는 걸 보면 주로 김동인과 김동리의 단편 소설들이었나 보다. 그때 읽었던 글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책들이 퇴폐미를 즐기는 지금의 나의 감수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도 같다. -나의 이전 글, [퇴폐미 좋아하시나요?] 참고-
요즘처럼 매일같이 글을 쓰다 보면 이들 작가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심이 새삼 든다.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강렬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이 강렬했기 때문일까? 타고난 상상력과 감수성이 엄청난 것일까? 그 글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쓰는 글들이 하찮게 느껴지는 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하나 둘 독자들이 생기자 나는 감출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글 한 줄 쓰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30분이면 후루룩 써 지던 글도 이제 몇 번을 망설이고 며칠을 고치게 된다. 단 한 명에게라도 의미없는 글 파편이 아닌, 따뜻한 햇살 한 조각 되고 싶은 욕심에 끙끙거리게 된다. 감히 김동리와 김동인처럼 어느 가난한 다락방 소녀에게 강렬한 감수성을 심어줄 수 없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