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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23. 2018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라이프]로의 진보

개인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과 조직과 권력의 문제를 보는 것의 차이

   한 때 TV가 바보상자로 불리고, 드라마가 남녀의 애정과 복수 이야기로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했다면, 이제 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는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쉽고 재미있게, 하지만 묵직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며 사회적 이슈를 주도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라이프]는 의학드라마보다는 사회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라이프]와 가장 비슷한 드라마가 오래전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 [하얀 거탑]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하안 거탑]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많은 드라마들이 인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선의지나 악함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면에서 개인을 움직이는 사회나 조직의 문제와 구조적 갈등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하얀 거탑]의 주인공이 개인의 욕망으로 성장하고 파멸하는 과정을 다루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적인 문제를 보여주지만, 실상 세상에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배우 김명민의 명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주제를 선물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선과 악의 대결을 즐기게 될 뿐, 우리 내부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서 이수연 작가의 [라이프]는 앞서 [비밀의 숲]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사건을 일으키는 인간의 문제와 인간의 관계에 천착하기보다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본질인, 숨겨진 조직과 권력의 문제에 집중한다. 그래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우리 사회의 문제임을 알게 되고 어느새 내 삶도 그 드라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고 소름이 돋는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환경적 동물이다. 같은 환경 안에서도 개인의 의지와 도덕적 신념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그 개인에게 냉정한 상황판단력과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라이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병원의 민영화와 공공성, 의사의 본분과 사회적 성공,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욕망, 인간 존엄의 문제와 인간의 허약함, 의료사고와 그것을 다루는 의사의 고민들이 개인의 신념이 아닌 사회의 문제임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과 현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라이프] 속의 불의한 인물들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문제를 덮고, '내 잘못이 아니니까'라며 모른 척하고, '관행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또한 [라이프] 속의 선한 인물들도 문제를 직시하고 의문을 제기할까 내적 갈등 하고, 스스로의 양심에 움찔거리며 고민하며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 일에 대한 열정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선한 모습이다.


 그래서, 특별히 선하거나 특별히 악한 성격과 뛰어난 능력의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는 [하얀 거탑]에서, 견고하게 유지되어 있는 조직과 사회의 패러다임을 조금이라도 흔들려는 평범한 듯한 인물들이 가득한 [라이프]로의 문제 인식 방향 전환은 틀림없는 진보이다. 특히나 병원이라는 공간은 너무나 절박한 사람들과 너무나 전문적인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거대한 성이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 [라이프]는 의미심장하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는 것이라 믿었던 조직의 민낯과 그 현상들에 숨겨진 본질에 대해서 이제는 공론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사회와 조직에 대해 한번쯤은 의심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라이프]와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준 작가와 감독, 배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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