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쿨 동아리 체험활동을 지난 토요일에 진행했다. (비즈쿨이란 비즈니스와 스쿨의 결합어로 창업에 관한 수업이나 활동을 교육과정 속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 우리 학교는 작년에 이어 비즈쿨 운영학교로 선정되었고 내가 이 업무 담당자이다.) 동아리가 학생 주도로 운영되는 우리 학교 특성상 교사가 동아리 활동에 개입하기 어려워 그동안 비즈쿨과 창업에 대한 개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이번 체험활동 시작 전 한 시간 정도 「기업가 정신과 창업」 수업을 하고자 나름 작정하고 있었다.
8개의 비즈쿨 동아리에서 3학년부터 6학년까지 17명의 아이들이 신청해서 한 교실에 모였다. 적은 인원이지만 나와의 관계성도 없고 그들끼리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비즈쿨과 창업, 기업가 정신으로 이어지는 딱딱한 수업을 이어갔다. 나름 예상했던 분위기이기에 동영상과 간식 등 회심의 카드를 준비했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흐려갔다. 만으로 9살, 10살의 3, 4학년이 주축인 이들에게 이 무슨 가혹한 주제인가 싶으면서 문득 얼마 전 한 고등학교의 창업 수업이 떠올랐다. 우연히 참관했던 그 수업은 여러 학교에서 온 특성화 고등학생 30여 명을 대상으로 한 20대 창업가 청년의 강의였다. 강의가 노련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후배들에게 미리 간 자신의 길을 들려주며 도움을 주려고 열정을 다하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그 자리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할 정도로 무기력해 보였다. 그나마 몇 명의 학생이 가끔 질문을 하며 호응을 보내었던 것에서 작은 희망을 느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특성화 고등학교가 주는 막막함이 느껴졌고, 그 속에서 창업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다리처럼 보였다. 그래서 창업이 그들의 무기력함을 깰 수 있는 작은 별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처럼 지금 나의 이 막막한 진로 교육의 꿈이 이 아이들 중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별을 담게 해주길 기원하며 이 일을 시작했다.
창업 수업은 지루했지만, 3D펜으로 화분 만들기 수업은 즐거운 아이들 처음 진로교육을 시작할 때 나의 꿈을 지핀 것은 '적정기술'이었다. 3년 전 [소녀, 적정기술을 탐하다]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적정기술의 개념을 몰랐다. 적정기술이란 구매자가 적거나 구매능력이 없는 계층에게 꼭 필요한 기술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이 세상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투자하고 연구해야 하는 일을 말한다. 예를 들면 희귀병 치료제라든가, 아프리카 아이들이 쉽게 물을 운반하기 위한 도넛형 물통 같은 것이다.
아이들이 매일 수차례 먼 거리를 오가며 떠오는 식수를 좀 더 쉽게 운반하게 하기 위한 적정기술, 도넛형 물통 이 책의 저자는 책을 쓸 당시 중학생이었고, 그녀는 그 당시 우연히 듣게 된 적정기술 이야기 강연에 감동을 받아 적정기술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현재 산업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꿈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하고 진로교육은 이런 꿈을 꾸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너의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과학자, 의사 같은 직업이 튀어나오지 말고,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라거나 세계의 환경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거나 하는 삶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그런 꿈을 꾸는 별과 같은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2년 전 이 책 저자의 멘토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 학교에 와서 그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별과 같은 꿈을 심어달라고. 그 멘토는 정중히 사양하며 책의 저자를 소개해 주었고, 그 저자는 작년에 우리 학교에 와서 5, 6학년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다. 강연 당시 저자는 풋풋한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기에 어린 학생들에게 하는 강연에 능숙하지 않아 많은 아이들에게 내가 느낀 만큼의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2백여 명 중 한두 명이라도 작은 별을 가슴에 담았기를 기원한다.
올해 내가 운영하는 텃밭 동아리 아이들을 처음 만난 3월 어느 날, 내가 '우리가 재배한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판다'고 했을 때, 10살짜리 꼬맹이들 중 일부는 내게 항의했다.
" 우리가 키웠는데 우리가 먹어야지 왜 팔아요? 내가 다 먹을 거예요."
아이들의 환호성을 기대했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창업은 커녕 시장경제의 개념이 없는 그들 16명 중에서 10명은 각 반 개구쟁이 대표인 가운데(농사를 짓는다는 말에 흙장난 정도 생각하며 지원한 아이들) 남학생 13명, 여학생 3명의 불균형한 조합으로 우리 동아리는 험난한 출발을 시작하였다. 그날 나는 큰 숨을 한 번 쉬고 창업과 기업가 정신에 대해 쉽게 풀어 이야기하며 그들의 억울해하는 눈빛을 겨우 가라앉혔다. 지난 1학기 동안 그들과 함께 감자, 토마토를 키워서 학교 마켓을 열고 음식을 만들어 팔아 약간의 돈을 벌었다. 그 돈의 반을 기부한다고 하자, 그들은 또 들불처럼 일어났다.
" 왜 우리 돈을 기부해요? 싫어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 그 밭이 너희 땅이니? 밭에 준 물이 너희 물이니? 그 씨앗 너희 돈으로 샀니? 요리할 때 사용한 재료들 너희가 가져왔니? 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준비해 준 것이잖아. 그거 다 국민들 세금이야. 그럼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지. 너희들이 가져갈 돈은 심고 가꾸고 판매한 노력만큼의 돈이야."
그들과의 2차전도 이렇게 명목상 나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이들은 얼마만큼의 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알게 된 걸까?
학교에서 3년 동안 내가 꿈꿔온 진로교육과 1년 반 동안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병행하여 진행한 비즈쿨학교를 통해 이루려는 <꿈을 꾸는 별을 키우겠다>는 나의 꿈이 가능하긴 한 건지, 나의 역량 부족인 건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어쩌면 경쟁과 각박함을 무기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에게 꿈과 별을 이야기하는 내가 그저 꿈을 꾸는 것일 뿐인가 싶기도 하다.
그나마 내가 조금 뿌듯했던 활동이 있다. 지난 7월에 실시한 <꿈에 대한 나의 명언 쓰기 대회>였다. 600여 명의 아이들 중에서 200여 명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마친 이 대회에서 아이들은 꿈에 대한 자신의 명언을 다양하게 써냈는데, 그 속에서 아이다우면서도 의미 있는 작은 감동들을 많이 발견했다. 아이들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언어로 빛나는 별이 되어 꿈을 꾸고 있었다.
너는 꼭 할 수 있어.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꼭 너의 꿈을 믿어.
성공을 하려면 실패는 여러 번 하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 내가 쉽게 성공만 할 순 없어. 내가 느낀 고통은 내가 최선을 다한 정도야.
너는 꼭 할 수 있어.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꼭 너의 꿈을 믿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주변을 살펴봐라
포기하면 꿈을 이룰 수 없지만,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꼭 된다.
가끔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힘겨울 때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겉치레로 끝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까 갑갑해질 때도 있다. 진로를 이야기하기에 아이들은 어리고 나는 미로를 걷는 듯 난감해지곤 한다. 나는 아이들의 가슴에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닌 세상을 비추는 별을 심어주고 싶지만 여전히 하루하루 실패하고 난감해하며 또다시 꿈꾼다. 나의 꿈이 성공한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키워주길 꿈꾸는 교사이므로, 나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아이들이 내게 알려준 명언처럼.
포기하지 않으면 꼭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