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의 서론에서 작가는 '자신이 다시 두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논산훈련소에 아들을 데려다주며 분단의 그 질긴 생명력에 진저리 쳤고, 그 아들이 중고등학교 때 느꼈던 사교육의 폐해를 손자 때 더욱 심하게 겪게 되자 사교육의 끈질김에 또 한 번 진저리 쳤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사교육의 고통은 분단의 고통만큼이나 해답 없는 길고 긴 고질병이다. 심지어 망국병이라 부르면서 말이다. 나 또한 교육 좀 아는 엄마인 척 하면서 사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큰소리치다 중2병을 앓던 아이의 성적표 앞에서 한 번, 고 1 때 들어간 수학 학원에서 '선행 안 하고 고등학교에 온 학생이 다 있다'며 학원 선생님에게 꾸지람 같은 우려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아차 싶었으니까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의 아이들은 무엇이든 다 해주려는 부모 아래 살면서 행복할까?
아이들은 정작 기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없고 생각하기도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곤 했으니까.
그럼 부모의 잘못일까?
우리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목격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자식들에게 나보다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면 더욱 공부를 잘해서 더 좋은 대학과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30년 전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좋은 환경만큼이나 공부하기 힘든 환경도 강화되었고,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교육은 더욱 확장되고 더욱 견고하게 아이들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심지어 노는 방법, 글 쓰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까지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배워서 노는 것은 나의 놀이가 아니라 그저 조금 재미있는 공부일 뿐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감정을 잃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더욱 순간적인 쾌락을 찾게 되지만 그럴수록 가슴 깊은 데서 나오는 감정은 메말라간다. 이런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친구 관계나 가족 관계, 공동체 생활 속에서 조금씩 그 증상을 보이고 있다.
친구 관계를 확장하기보다는 폐쇄하면서 우리의 친구이기보다, 나만의 친구 관계에 집착하고 그 친구가 떠날까 불안해하는 아이,
나의 주장을 내세우기만 할 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
평소에는 말없이 생활하다가 자신이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세상에 분노를 폭발하는 아이.
그럼 제도의 잘못일까?
얼마 전 2022학년도 대입 계획안이 발표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계획안이었다.
더 이상 주입식 교육 방법으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입장과 공정한 결과를 원하는 입장, 모두가 실망한 입시안.
이는 초등학교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서열화나 점수화를 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찾아내고 키워주어야 하는 평가 방법, 그래서 교육목표, 평가목표만이 가득한 성적표가 분기별로 가정으로 보내진다.
과거와 같이 명확한 결과를 원하는 학부모와 학생의 발달 과정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성적표 사이의 괴리.
이상을 위해 현실을 포기해야 하나, 현실을 위해 이상을 버려야 하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로에 갇힌 느낌.
끝없는 교육 이야기에 또 하나의 곁다리를 나도 하나 얹어 본다.
정부는 지방 대학을 키워야 한다. 각 지방 주요 도시에 서울 주요 대학 부럽지 않은 대학이 포진해야 한다.
이제 명문대가 예전처럼 대기업에 들어가는 프리패스 티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바뀌지 않았다. 3류 대학을 다니는 우리 아이는 왜 주눅 들어야 하는가?
'공부 안 하고 놀았구나'라는 세상의 시선,
'그 대학 나오면 뭐 할래?'라는 우려, 그리고 현실.
서울 10대 대학 못지않은 지방 국립대학 및 지방의 우수 사립 대학을 키워야 한다. 우수한 교수진을 유치하고, 우수한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 우수 기업체와 연계해야 한다. 그래서 서울 주요 대학에 못 가더라도 충분히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우수한 기업에 취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부모들은 전전긍긍하며 서울 주요 대학을 아이들 앞에 목놓아 외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