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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Oct 13. 2019

학생 다모임은 어렵다

 "이번 달 학생 다모임 어떻게 할까요?"

다들 말이 없다.  

"할 주제가 있을까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매월은 못해도 한 달 건너 한 달은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또 건너뛰는 건가.'

  이번 달도 주제를 뭐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다모임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이다.  

[학생 다모임]이란 혁신학교에서 주로 실시하는 활동으로 전교생 또는 전 학년 학생들이 모여서 어떤 주제에 대해 토의하는 학생 자치 활동이다.  토의 주제는 주로 학교 생활의 불편한 점에 대한 건의, 또는 학교 규칙에 대한 의견 등이다.  예전으로 치며 전교 어린이회의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 그것도 100명이 넘는 3학년 학생들의 다모임을 연다는 것은 다행복 3년 차, 다모임 2년 차인 우리에게도 녹녹하지 않다.


  일단 100여 명의 학생들을 강당에 모이도록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조금만 풀어줘도 튀어 오르는 아이들을 100명이나 모이도록 하고 이들에게 토의를 시킨다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나 스스로도 고민스럽다. 무엇을 위한 다모임인지.  해야 하는 건지. 주제가 없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건지. 그 주제란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10살 먹은 학생 100명이 모여 할 수 있는 다모임 주제가 뭘까?  자꾸 학교 규칙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다모임일까? 아이들은 이런 다모임을 원할까?  '꼭 할 주제도 없는데 학생 다모임을 이 바쁜 시기에 굳이 해야 하나'는 생각일 수도, 아니면 '어린아이들의 다모임을 여는 것이 굳이 필요할'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교사가 원하는 규칙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겉으로는 자치의 이름으로, 속으로는 통제의 수단으로 '너희 스스로 규칙을 정했으니 꼭 지켜라'라고 말하기 위해 다모임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자유 뒤에는 그에 부합하는 책임이 따르는 것인데, 그 책임의 무게를 이해하기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자치는 너무 과한 것인 걸까? 그럼 언제부터 가능한 걸까? 결국 다모임은 학생 자치 기구인가, 학생 통제 기구인가?  이런저런 고민 끝에 2학기 첫 다모임을 여는데 선생님들이 동의해 주었다.  


    10월 다모임, 올 들어 3번째, 그리고 2학기 첫 다모임이다. 주제는 '우리 반 자랑하기'이다.

 먼저 5개 반이 2명씩 헤쳐 모여해서 10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서 자기 반의 자랑 거리를 돌아가며 말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자기 반으로 돌아와 우리 반 자랑거리를 모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만을 찾아보 다모임이 아니라 우리 반의 자랑거리를 찾아보고 자긍심을 갖고 더욱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마음을 키워주고 싶었다. 이것에 대한 후속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가 교사의 몫이고 다모임의 의미가 될 거라 본다. 그걸 통해서 아이들 스스로가 한 말의 무게와 보람의 크기가 정해질 것이다. 이를 통해 말의 힘과 자유의 책임이 있음을 체득하리라 믿는다. 아이들을 믿고 간다는 건 힘들지만 의미 있는 전진이다.


   스포츠 홀릭, 문화예술 강사 수업, 프로젝트 학습, 외부 강사 수업 등으로 교과서 수업 진도는 조금씩 밀리고 있음을 안다.  그러다 보니 학생 자치의 영역은 항상 뒤로 젖혀졌다.  수업 진도에 대한 부담은 나 또한 항상 있다.  하다 보면 1시간이 2시간이 되는 건 예사니까.  그래도 학생 다모임은 학교의 민주적 문화와 미래의 민주시민 사회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없을까? 너무 어린아이들이라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지만.  

 

   다모임 후 선생님들의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

  '좋은 주제였다.'

  ' 이들의 모습이 의외로 믿음직했고 선생님들의 자세가 감명 깊었다.'

  그렇게 원활한 다모임이라 할 수 없었는데도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 혁신의 우수 멤버답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공감해 주었다.


  어쩌다 보니 혁신학교 3년 차이다. 학교현장을 혁신하고자 한 뜨거움으로 시작했던 1년 차의 물결이 이제는 잔물결 잔잔해졌다.  그만큼 안정이 되었고 작지만 소중한 변화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학생 다모임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서는 아 미로 속이다.


  항상 쉽게 가는 것보다 어렵게 가는 쪽을 택하는 나를,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을 튕겨내지 않고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내 주변에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이런 분들을 동료로 두고 있는 나의 행복 기간이 이제 몇 달 안 남아서 슬프다.


 '다모임 주제가 문제라면 주제 제안판을 복도에 게시해 볼까?'

 진격의 박 선생은 또 머리를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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