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레이어는 완벽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내가 학교를 옮기는 이유

by 연구하는 실천가

"교장선생님, 저 오늘도 사고 친 거 같습니다. 휴대폰을 벽틈 사이로 빠뜨렸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휴대폰 없이는 한 시도 못 사는 나는 이런 일로 교장선생님께 말하기가 민망하여 우물쭈물거렸다.

" 박 부장, 혹시 학교 옮기기 싫어서 일부러 휴대폰을 거기에 빠뜨린 거 아니가?"

항상 싱글벙글한 교감선생님이 장난을 건다.

" 아... 어떻게 아셨어요. 안 꺼내 주시면 정말 학교 안 옮길 겁니다."

"그럼 잘 됐네. 그냥 이 학교 있으면 되겠네. 그래도 내가 행정실장에게 방법을 찾아보라고 얘기할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괄괄하신 교장선생님이 웬 일로 차분히 말하셨다.


올해 나는 학교를 옮긴다. 우리 학교는 교장의 권한으로 일부 선생님이 계속 학교에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남을까 잠시 고민했었다. 교장선생님이 남으라고 잡으면 못 이기는 척 남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가는 사람을 먼저 잡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의 이유로 학교를 옮기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진로와 동아리, 비즈쿨, 학년 업무 등 혁신학교 업무팀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업무량에 나는 하루하루를 버듯 살았다. 하지만 내가 교육과정을 만들어 간다는 기쁨과 자부심에 힘든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일을 4년 더 할 생각이 이제는 들지 않다.


가수나 배우가 공연을 마친 후 텅 빈 무대를 보고 느낀다는 그 허무가 뭔지는 모르지만 이 감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11월 동아리 행사가 끝나고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초겨울 바람 속 펄럭이던 빈 천막 그리고 12월 교실을 비우느라 물건을 쏟아붓듯 득 담아놓은 박스와 바구니들이 마치 내 마음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찾아오는 이 허무와 무력감은 나에게 결국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 학교를 떠나자고.


이젠 떠나고 싶다. 내가 꿈꿔온 것을 실현해보고자 열정을 다했던 이 학교에서의 4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했지만 자꾸 지쳐가는 나 자신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방학식 날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마무리하지 못해서 종종 거려 결국 주변 선생님들이 먼지 가득한 내 교실을 청소하게 만드는 상황에 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능력도 안되면서 큰 일을 떠안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그래서 이 학교를 떠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 계속 있으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므로.


"어떻게 손이 그렇게 빠르세요. 그 많은 일을 해내는 게 신기해요."

나의 일 양을 아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나는 나의 일 처리 능력의 비밀을 속삭이듯 알려준다.

"대충 하면 돼."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대다수가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교실에 가면 느껴지는 정갈함과 반듯함.

나의 교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내 교실의 게시물은 일단 뭐든 조금씩 다 삐뚤하다. 책상 위는 항상 뭔가 흩어져있다. 선생님들은 주어진 업무를 깔끔하게 해낸다. 나 같으면 대충 해 버릴 일을 몇 번을 확인하고 재편집해서 마무리한다.


" 상신한 공문에 첨부파일이 빠졌네요."

모니터에 깜빡이는 교감선생님의 메시지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답글을 달았다.

" 아. 까먹었습니다. 지금 바로 첨부하겠습니다."


오후에 교무실에서 나를 본 교감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까먹었다는 우리 박 부장 말이 너무 귀엽습니다. 실수가 많은 게 더 귀여워요."

'하.. 싸우자는 건가. '

내가 전의를 불태우려는 순간, 다음의 말이 이어졌다.

"완전 저를 보는 느낌이에요."

그 순간 나는 약간의 찜찜함을 느끼지만 웃으며 말했다.

" 하하하, 그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다만 우리 학년 선생님들을 떠나는 점에서는 마음이 무겁다. 내가 벽 틈에 떨어뜨린 핸드폰을 포기하려는 순간,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1년간 보여줬던 팀워크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만능 맥가이버이신 3반 선생님은 어디선가 구해온 막대기 3개를 연결해서 기다란 막대기를 만들었다. 싹싹한 막둥이 5반 선생님은 막대기 끝에 양면테이프를 돌돌 말아 붙였다. 배려와 여유의 아이콘 1반 선생님은 큰 키로 벽틈 사이를 가볍게 내려다보며 휴대폰이 떨어진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어 막대기를 넣어서 1미터가 넘는 벽 위로 휴대폰을 끌어올렸다. 긍정과 추진력의 여왕인 4반 선생님은 좌절하는 나에게 꺼낼 수 있을 거라고 믿으라고 큰 소리를 옆에서 쾅쾅 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추억이 가득 저장된 핸드폰은 내 곁으로 돌아왔고 나는 그제야 철없는 학년 부장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그렇게 멀티 하지만 엉성하고, 일은 잘 벌이지만 주워 담지 못하는 나를 '잘한다, 예쁘다'하며 거둬준 그들을 떠나는 슬픔은 조금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서 나의 이런 엄청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숨기고 내 교실 속으로, 우리 아이들 속으로 꽁꽁 숨어 살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우리 학교 모든 이들에게.



이전 18화레이터 어답터의 비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