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도 날짜도 모르는 엄마는 일요일 오전 9시 20분인 지금 곤히 잠들어 있다. 한두 시간 뒤면 조용히 일어나서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나를 향해 오늘은 출근 안 하냐고 이른 아침인 양 말할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세월은 시간도 공간도 없는 평면과 같다.
그래도 세상의 세월은 겨울 날씨처럼 냉정하게도 쉼없이 흘러간다. 그렇게 세밑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내가 일 년 중 유일하게 체감하는 이맘때다. 조상님들이 새해라고 부르는 1월 1일이 다가오고, 해가 가고 있다고 말하는 연말이 된 것이다. 그 옛날 조상님들은 1년 단위로 지구가 해를 만난다는 걸 어쩌면 이처럼 잘 표현했을까 싶은 만큼 <해>라는 단어가 내 맘에 딱 와 닿는다.
요즘 너무 밥을 못 드시는 엄마에게 내가 걱정 어린 말을 슬쩍 내비치자, 엄마는 오랜만에 웃음을 보여주며 말한다.
" 야야, 내가 지금 나이가 팔십다섯이다. 이렇게 오래 사는 건 다 밥을 적게 먹어서 그런 거다. 걱정마라."
엄마는 내년에 91세가 된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나이를 계속 85세라 말한다. 언젠가 굳이 내가 90이라고 고쳐주자, 엄마는 노한 듯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래서 그냥 계속 85세로 사시는 걸 인정해 드리기로 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본능적으로 앞치마부터 찾는다. 앞치마를 허리에 매면서 엄마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또 외출하고 돌아올 경우도 즉시 앞치마부터 찾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앞치마를 매고 있지만 정작 집안일은 내가 부탁하는 몇 가지 외에는 없으므로 주로 앞치마 맨 채 tv 보고 밥 먹고 쉬고 한다.
아침마다 앞치마를 허리춤에 차는 의식은 엄마에게 아주 중요하다. 엄마가 평생을 해 온 삶의 무게인 듯 무거워 보인다. 그리고 하루가 끝나는 순간 엄마는 그 무거운 앞치마를 비로소 내려놓는다.
가끔 엄마는 그 앞치마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날은 집안에 난리가 난다. 본인을 미워하는 누군가가 앞치마를 훔쳐갔다며 출근하는 혹은 집안일을 하는 나를 붙잡고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면 나는 아무리 급해도 그 즉시 엄마 침대와 장롱을 뒤져서 앞치마를 찾아내서 엄마 손에 쥐어준다. (가끔 못 찾기라도 하면 그날은 무한 반복되는 설움의 시나리오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면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깐 머쓱해하고는 끝이다.
그렇게 엄마는 변치않는 85세의 나이로 계절도 밤낮도 지운 채 하루하루 세월을 잊고 산다. 또 요즘은 어찌나 잠이 많아졌는지, 낮에도 밤에도 수시로 자고 깨고를 반복한다. 유아에서 영아로 돌아가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엄마의 세월은 이렇게 한 해를 넘기며 다시 한번 85세가 될 예정이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50의 딸은 요즘 조금씩 엄마의 세월에 대해 예민해진다. 말없음, 무기력함, 무표정, 느려진 행동으로의 엄마의 변화에 초겨울 고엽처럼 내 마음도 말라간다. 예전에는 과한 감정 기복, 반복되는 신세한탄, 주변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의심에 힘들었다면 이제는 내 삶이 조금은 편해졌다면 편해졌는데 내 심정은 왜 이리 타들어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