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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Jul 28. 2019

노오란 별처럼 노오란 계란죽

내 영혼의 허기를 달래다

'이거 한 그릇 먹고 자라'

열감기에 까무룩 잠든 나를 엄마는 흔들어 깨운다.


  비몽사몽 앉아 있는 내 얼굴 가까이 계란죽 한 그릇들어온다.  엄마는 죽그릇을 내 얼굴 가까이 대고 한 숟갈 가득 떠서 입에 넣어준다. 엄마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는 아픈 자식을 두고 출근야 하는 어미의 아린 가슴을 모른다. 그저 밀고 들어오는 숟가락에 마지못 메마른 입술을 조금 벌릴 뿐이다. 미각을 잃은 까끌한  이 달갑지 않다.  하지만 이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끝을 간지럽히며 입맛을 깨우더니 혀끝에 닿는 드라운 계란의 촉감과 신한 죽의 따스함이 마음까지 닿는다. 부어있는 식도를 간신히 넘어간 한 숟갈의 죽은 허기진 이의 영혼 따습게 채다.  그리고 상쾌한 공기가 열에 들뜬 뺨을 훑고 지나간다.  순간 열에 잃었던 기운이 혈관을 따라 조금씩 되살아나며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뜨게 한다.  그 눈 앞에 검은 하늘이 들어왔고, 반짝이는 별들이 려왔다.  내가  곳은 방안이 아니었다.  단칸방 문을 열면 정지라 불렀던 작은 부엌이 있고, 그 부엌 문을 열고 나오면 아주 작은 마당에 아주 작은 평상이 있다. 나는 그 평상 위에 앉아 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좁은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죽을 끓인 엄마는 다른 식구들이 깰까봐  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나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나는 왜 이때의 기억 그날의 별처럼 머리 속에 박혀 지금껏 반짝이는 걸까?  엄마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멸치볶음, 어묵볶음, 호박나물, 콩나물 반찬, 깻잎 반찬 등 뻔한 밑반찬들과 시래깃국, 된장찌개, 생선조림 등 시커먼 국, 찌개 몇 가지로  돌려막기하며 엄마는 가족들의 반찬 투정을 못 들은 척였다.  내겐 정말 지겹기만 한 반찬들이었다.  무엇보다 한 번에 냄비 가득 만들어 일주일 내내 먹 것이 내겐 말 고역이었다.  그래서 내게 엄마 밥에 대한 추억은 특별한 것이 없다.  지금은 그 맛이 그립지만 그건 시간이 가져다준 아름다움일 뿐이다.   다른 집 엄마처럼 노란 계란물 입힌 분홍 소시지, 부드러운 감자 사라다, 고소한 도넛을 뚝딱뚝딱 만들지 못하는 엄마가 종종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고단한 삶을 견뎌야 했던 그때의 엄마에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그때의 나몰랐다. 그런 엄마가 아픈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별식이 아마 계란죽이었을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밤 10시에 한 엄마는 들어 버린 아픈 딸아이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부엌 한 켠의 곤로 심지에 불을 켜고 냄비를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밥이나 생쌀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한참 저 밥알이 완전히 풀어지면 귀한 계란 2개를 아낌없이 풀어 휙휙 둘러주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불을 끄고 참기름 한 숟갈, 깨소금 한 번 후루룩 뿌려주면 끝이었을 간단한 음식, 계란죽을 끓였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 봤으나 그 맛이 나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멸치 맛국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기억의 조각을 많이 놓친 엄마께 여쭤봐도  수 없.) 


  지금도 몸이 안 좋으면(사실, 몸보다 마음이 허기지면) 그때의 노란 계란죽 생각이  난다.  고소한 그것을 한 숟갈만 엄마가 떠서 내 입에 넣어주기만 하면 바스라질 것같던 내 영혼도 일어설 것만 같다.  노오란 그 색깔만 떠올려도 군침이 돌고 사라졌던 기운이 솟아날 듯하다.  쩌면 내가 먹고픈 것은 계란죽이 아니라 그 시절 곤로 앞에 앉아 죽을 끓이던 기둥 같았던 엄마의 어깨,  내 입을 보며 나와 함께 '아'하며 입을 벌리던 엄마의 푸근한 얼굴, '엄마 손은 약손'하며 노래하듯 중얼거리며 내 배를 쓰다듬던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의 추억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 옆에 앉아서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하루 종일 켜 놓고 자꾸만 꼬박꼬박 졸고 있다. 엄마는 지금 어떤 꿈을 꾸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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