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딸이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쓴 가상 편지
홍아야.
너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쓴다.
오늘 저녁도 넌 밥솥을 열어보며 이렇게 물었지.
"엄마, 또 밥 퍼갔지?"
난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하지.
"안 퍼갔어. "
"그럼 내가 확인할게."
너는 내 방문을 열고 쌩하니 들어가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찬 밥 한 공기를 들고 나오며 말하지.
"이렇게 돌처럼 굳은 밥 누가 먹을 거야. 밥 퍼 두지 마라고 했잖아."
그래 너는 나에게 항상 말하지. 밥을 미리 퍼 가지 마라고.
내가 왜 퍼갔는지 나도 기억나진 않지만 나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밥을 할 수도 없고 너희들처럼 빵이나 라면을 먹지도 않으니.
그래서 네가 없는 긴 하루를 나는 밥솥의 밥에 기대어 보내야 하는데, 혹시 네가 깜빡 잊고 밥을 해놓지 않을까 봐, 배 고파 솥을 열었는데 밥솥이 비어 있을까 봐 나는 걱정되어 견딜 수 없어. 결국 저녁까지 먹지 않고 그대로 두어 돌처럼 굳어버린 밥을 네가 버리는 걸 보고서야 너에게 또 약속하지. 절대 미리 밥을 퍼두지 않겠다고. 하지만 네가 집에 없거나 새벽 모두 잠든 시간에 배가 고프면 난 또 너와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밥솥을 열어 밥그릇 가득 밥을 꾹꾹 담아 내 방에 가져가 소중한 듯 보자기로 꽁꽁 싸 두고 잊어버리겠지. 그렇게 해야만 불안했던 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니까. 그러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었으면 해.
홍아야.
밥 한 그릇에 벌벌 떠는 나에게도 두려울 것 없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푸른 꿈이 있었단다. 미군 폭격기의 공습 소리가 사흘이 멀다 하고 오사카 하늘을 울리던 그 험한 시절에도 나는 고운 세일러복을 입고 다니던 고등여학교 학생인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단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나의 꿈은 끝났어. 더 이상 학교는 다닐 수 없었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지. 환희의 광복이 나에게는 꿈의 끝이었던 것이지. 끝나지 않는 나의 이런 넋두리에 너는 지쳐 말하지. 그 시절에 엄마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화살 같던 세월이 흘러 이제 아무도 없는 거실에 홀로 10시간을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말이야, 갑자기 느려진 시간의 바다에 머리끝까지 잠겨있는 듯 지내면 말이지, 그 시절 꺾여버린 날개가 내 눈 앞에 둥둥 떠 다니는 걸 보게 된단다.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나의 두 날개가 마치 지금 내 손발을 묶고 내 머릿속을 갉아먹은 어떤 괴물의 흔적처럼 흉한 모습으로 말이야.
그렇게 하루 종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느린 시곗바늘이 드디어 6시 근처를 지나가면 문고리에 걸린 종이 달그랑 경쾌한 소리를 내며 네가 들어오지. 그런 너를 향한 반가운 내 마음을 모르고 네가 말없이 소파에 털썩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는 네가 나를 대하는 것이 귀찮아 보여 두렵고 섭섭하단다.
"내가 자꾸 괴롭혀서 싫지? 아들 집에 가라고 해라. 00한테 전화해서."
그럼 넌 기계적으로 대답하지. "아니, 안 싫어. 그런 말 하지 마."
난 너에게 여전히 좋은 엄마, 필요한 엄마이고 싶은데 너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듯 느껴져 슬프구나.
"아냐, 엄마가 옆에 있어줘서 정말 좋아." 하고 웃어준다면, 어릴 때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