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산책로는 나에게 집이다. (https://brunch.co.kr/@@6ghQ/192) 이러한 나의 산책 사랑은 나만의 사색 여행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엄마의 유일한 외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출근하거나 일 관련 약속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자신을 두고나 혼자 또는 식구끼리 외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두고 가야만 하는 일이 있을 경우, 출근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 엄마는 마지못해 다녀오라고 한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모든 외출에 엄마의 동행은 필수불가결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나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나의 껌딱지이자 나의 그림자이다.엄마는 내가 출근하면 내가 퇴근하는 시간만을 기다린다. 요양보호사가 오전에 오기는 하지만 엄마는 요양보호사와 외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를 기다려 나와 외출하고자 한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운전하는 것은 더 싫어하는 나와 어떻게든 나와 바깥을 나가고 싶은 엄마가 타협한 것이 바로 산책이다. 그렇게 나는 앞장서고 엄마는 뒤따르는 산책로까지의 동행은 산책로 앞의 벤치에서 갈라진다. 엄마가 산책로 앞 벤치에 앉으면 나는 이어폰을 장착하고 왕복 7킬로의 산책을 시작한다. 그럼 엄마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하고 예쁜 들꽃을 꺾어서 손에 쥐고 있기도 한다. 혹은 근처 체육시설물에 있는 훌라후프를 열심히 돌려보기도 한다. 아주 가끔 또래 할머니가 오셔서 말을 걸면 오랜만에 식구 아닌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엄마의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 그토록 재미있어하던 텔레비전 화면 속 장면도 지금은 알 수 없는 사람의 알 수 없는 소리의 울림일 뿐이고 즐겨 읽던 책 속 글자들도 어느 날 갑자기 답답한 암호로 바뀌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다.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사는 엄마의 관심사는 오로지 밥, 간식, 외출 이 세 가지뿐이다. 이것들만이 자신이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방학이 되어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딸을 보니 엄마는 더욱 외출에 대한 열망이 뜨거워졌다. 저녁마다 가는 산책시간까지 엄마는 도저히 못 견뎌했다. 수시로 외출복을 입고 나에게 나가자고 한다. 이 여름 한낮 땡볕에 산책은 무리다. 그래서 함께 커피숖에도 가봤지만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를 보는 것이 불편했다. 타고난 집순이에 해야 할 업무와 집안일들도 쌓여있는 나는 이 더위 속으로 전혀 나가고 싶지 않다. 며칠을 엄마와 씨름하던 나를 지켜본 요양보호사는 자기가 있는 오전만이라도 혼자 나가서 좀 쉬라고 했다. 수시로 내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가자를 외치는 엄마를 본 요양보호사 입장에서는 내 모습이 딱해 보이기도 하고, 내가 집에 있으니 엄마가 자신과 공부를 안 하려 해서 힘들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제야 골방에 박혀서 책 읽고 컴퓨터 하는 내 모습이 요양보호사에게 다소 불편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나는 요양보호사가 오는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책 한 권을 들고 집 앞 커피숖에 간다. (어떤 날은 탁구장, 어떤 날은 도서관에도 간다. 물론 엄마에게는 출근한다고 말하고.)
처음 혼자 가보는 커피숖, 여기는 정말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그리고 책 한 권, 때로는 이어폰, 그리고 쾌적한 공기는 나에게 또 다른 집, 그리고 작은 자유를 선물하였다. 골방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다 보면 10분 안에 졸음과의 사투로 바뀌는데, 1시간 넘게 이렇게 책을 맛있게 읽어 내다니. 환경의 중요성이 이렇게 크다.
행복한 오전을 보내고 돌아오면, 엄마는 또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그리고 시위하듯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원격연수를 듣는다. 잠시 뒤 엄마는 깜빡깜빡 졸고 있다. 내가 골방에서 책을 읽다 더위에 취해 조는 것처럼, 의미 없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은 엄마에게 자장가에 불과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 엄마, 다대포 가자."
엄마는 어딘지도 모르면서 스르르 웃으며 좋다고 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처음 알았다. 여기서 다대포까지 겨우 15분 거리라는 것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고가 다리 위의 운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큰 맘을 먹고 을숙도 대교를 타고 넘어가니 금방 다대포이다. 오후 3시가 넘은 평일 오후, 걱정한 만큼 차가 밀리지 않았고 주차장에 자리도 있다. 그렇게 도착한 다대포는 예전에 내가 알던 버려진 바닷가가 아니었다. 예쁜 해송들과 파릇파릇한 잔디, 아기자기한 벤치와 정돈된 오솔길, 넓은 백사장과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근사하게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해송 사이 잔디에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깔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나도 해송 사이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엄마에게 앉아보라고 했다. 아직 햇살은 따가웠지만 우리 동네 산책로와 달리 해송 사이 길은 산책할 만큼의 그늘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걷고 돌아왔다. 엄마는 돗자리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내가 다가가 심심하냐고 물어보니 안 심심하고 좋다고 했다. 나는 안심하고 또 한 시간 정도를 걷고 왔다. 엄마는 해송 숲 솔바람 사이에서 편안해 보였다.
해송 사이에 누워 있는 엄마
" 다음에는 먹을 것도 가져오자."
내 말에 엄마는 기뻐했다. 사실 이번 방학 때 엄마가 가고 싶어 하던 일본 여행을 가려했다. 어디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어디 가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의 방학은 항상 힘들었다. 그래도 큰 맘먹고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잘 오지도 않는 남동생을 재촉해서 여행 계획을 잡게 했다. 하지만 우리 남매와 엄마의 일본 여행 계획은 이번 한일 경제문제로 일단 유보되고 말았다. 며칠을 고민하며 추진할지 말지를 생각하던 나는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유예를 시키고 말았다. 나가자를 외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렇게 다대포를 좋아하니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엄마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더운 한낮에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라 우리 둘에게 안성맞춤이다.
"엄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엄마와 백사장을 걸으며 나는 물었다.
"몰라."
"여기 다대포야. 또 오자."
항상 그림자처럼 내 뒤를 느릿느릿 따르던 엄마가 오늘은 내 옆에서 성큼성큼 걸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