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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22. 2018

감정과 기억 사이 행복방정식

청소년 소설 [ 아몬드]를 읽고

  <아몬드>라는 책을 읽었다. 감정이라는 뇌의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아이 이야기. 아이는 상대방의 감정은 물론, 자신의 감정도 알 수 없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할머니가 눈 앞에서 피 흘리며 쓰러지지만, 아무런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는 괴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한 편으로는 감정의 소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아이가 참 다행이다 싶다.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고통이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겪는 고통보다 크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은 엄청난 사고를 겪고 그 트라우마로 고통받기보다 차라리 기억이나 감정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 지점에 또 다른 아이, 곤이가 있다. 자신이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더 강한 존재가 되려고 하지만 더욱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그 아이가 부럽기조차 하다.


 매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그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자 애쓰면서 소진되는 에너지에 지쳐 퇴근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모든 일이 무덤덤하고 객관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물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일이 아닌 비극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 아이보다 더 무감정한 존재 아니냐고. 현대인들의 공감 능력은 남의 문제일 때는 얼마나 철저하게 무기력해지는 지 생각해 보라고.


 엄마는 심하게 더위를 탔었다. 작년까지 겨울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선풍기를 켜고 살았고 봄,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 놓아 퇴근 후 돌아온 나를 아연실색하게 하였다. 그런 엄마와의 힘든 전쟁을 올 해는 치르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점차 기억이 사라지더니 이제 계절 감각도 사라지는 것인지, 올 초부터는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를 수시로 물어보았다.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이번 여름 날씨라면 아마 하루 종일 덥다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외치면서 계속 에어컨을 틀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 엄마는 덥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선풍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기는 하였지만 심지어 옷을 두 겹, 세 겹 껴입고 있기도 했다.  엄마는 날씨와 상관없이 수시로 춥기도 했고 덥기 했고, 대부분은 잘 알지 못했다. 엄마의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 날씨 감각이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기억이 본능적 감각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까? 아니면, 감각 기관 또한 함께 퇴화되어 가는 걸까?


 아이는 행복한 느낌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았을 모른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 헤맬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는 지금 행복할까 불행할까.  감정이 예민한 사람은 덜 행복하지 않을까? 자신의 고통에는 예민하면서 남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현대인은  행복과 불행 사이 어디쯤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생각은 이렇게 알 수 없는 질문들로 가득 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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