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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May 03. 2020

또 시작하며

노모, 그리고 형제

  나는 올해 91세 엄마와 함께 산다.  엄마는 치매가 심해지면서 익숙했던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졌다.  그래서 항상 불안한 엄마는 제일 낯설지 않 존재인 나에게 시간이 갈수록 의존과 집착을 보인다.  그래서 주간보호센터를 가는 때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외출을 한 번 하려면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내가 둘러대는 거짓말은 주로 '일 때문에 나가야 한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따라나서겠다는 엄마를 말릴 수가 없다.  또 집안해도 해도 끝이 없다.  매일 화장실을 청소해도 분뇨 냄새는 곳곳에 스며든다.  가장 힘든 것은 새벽마다 일어나는 엄마 때문에 남편이 잠을 설친다는 사실이다.  또 자다가 다리가 심하게 저려서 온 식구들이 매달려 주무르기 일쑤다.  


  결국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역할을 분담하자고.  남동생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난 엄마랑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이 '니 엄마랑 같이 살 수 없다'로 순간 들렸다.  전화를 끊고 하루 종일 허탈감과 분노, 슬픔이 반복되다 마음이 접어졌다.  동생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매일같이 비즈니스 약속이 넘쳐나고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온다고 한다.  '일에 파묻혀 살아서 자식도 안 가지는 형편에 어떻게 엄마를 모시냐'는 말이 종일 내 귓가에 쟁쟁 울렸다.  '요양원에 모신다면 반대하진 않겠다'는 말로 마무리하는 동생에게 나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항상 그렇듯이 나는 고통은 짧게 승화하는 편이다.

 '그래.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자. 내가 원래 좀 게으르잖아.  좀 싹싹하게 치우면 냄새도 덜 날 거고.  그리고 내가 먼저 기분을 밝게 가지자.  그러면 집안 분위기도 밝아질 거야.  내가 언제 누구 믿고 살았나.  항상 혼자 잘 해냈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마음속 근심을 털어내듯 손으로 허벅지를 툴툴 털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새삼스럽게 더욱 열심히 화장실을 청소하고, 방 곳곳을 청소기로 밀었다.  

  '그래 매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부모가 늙고 아프면 형제 중에서 부모에게 조금 더 하는 사람과 덜 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 지점에서 형제는  남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로 이해하고 감사한다.  각자 삶의 강도, 물리적 심리적 거리, 부모에 대한 애틋함의 정도가 완벽하게 같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더 하는 사람은 덜 하는 사람이 조금씩 섭섭해지고, 덜 하는 사람은 더 하는 사람에게 점점 미안해 눈치가 보이고 그렇게 서로 할 말을 꾸욱 참고 지나간다.  그러다 더 하는 사람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덜 하는 사람은 그동안 미안함에 참고 있던 속내를 기회다 싶어 털어놓아 버린다.  그러면 더 하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역습에 말문이 막히어 남이 되거나 섭섭함이 폭발하여 원수가 된다.  하지만 나는 남도 원수도 되지 않을 작정이다.   그냥 그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이나마 해내게 할 것이고, 나는 그저 내가 해 왔던 일들을 좀 더 기쁘게 묵묵히 할 생각이다.  더 이상 누구에게 기대와 바람을 담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꾸 처지는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형제가 나의 마음처럼 함께 하지 못하는 섭섭함은 어쩌면 엄마에 대한 원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은 나 스스로가 만든 감정이다.  


  나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는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남편이다.  예민한 남편은 엄마 때문에 내가 자유롭지 못하고, 부부의 오롯이 주어지지 못하는 것.  특히, 새벽의 소란함에 지쳐가는 중이다.  이 부분이 나의 과제인데, 결국 이 과제 해결이 밀리는 날 나는 엄마를 모시고 요양원에 갈 것이다.  그 순간이 한 달 뒤이던, 1년 뒤이던 그 또한 나는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에 대한 나의 기대를 내 마음에서 놓고 그냥 내 소중한 삶과 엄마에게 집중할 것이다.  아직 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는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해 볼 생각이다.  그동안 나는 내 삶에도 엄마에게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 언저리쯤에서 나는 헤매듯 살아왔다.  나 자신을 연민하면서.  하지만 이제 내 삶을 위해서 주변의 도움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볼 생각이다.


   오늘 아들에게 오후에 할머니와 지내줄 것을 요청했다.  엄마와 아빠가 외식을 하고 오겠다고 하니 아들은 씽긋 웃으며 걱정마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오늘 오후 엄마에게는 급한 무가 생겼다는 거짓말을 하고 남편과 함 봄 날씨를 조금 느껴보려 한다.  또 언제든 필요하다면 기꺼이 요양보호사를 부르고 내 시간을 찾으려 한다.  비록  그 시간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이 불안한 다짐이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걱정하지 않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또 시작하고 또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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