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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Dec 22. 2019

대입에 실패한 수험생들을 위하여

피말리던 대입 수시 추합 기간을 보내며

 "일단 마음 비우고 기다려 보자."


 아이에게 대학 불합격과 예비번호를 들은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대학 원서 상담을 할 때 걱정하는 우리 부부에게 여유 있는 웃음으로 수능 최저만 맞추면 된다던 그때의 말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의 대입 격 (일명 추합) 기간은 느리게 느리게 지나갔다.   1차 추합이 발표되던 금요일만 해도 나는 태평이었다. 그래도 작년 기준으로 합격권이라 할 수 있는 예비번호였고 다른 대학에 일단 붙 상태였기 때문이다.  월요일 2차 추합의 숫자가 작년 추합 인원 대비 10명 가까이 확 줄어들었을 때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지만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화요일 3차 추합 인원이 몇 명 빠지지 않자 아이는 급격히 말 수가 었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허둥지둥 아이가 하루 종일 쳐다본다 <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일명:수만휘)>라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많은 아이들이 추합을 절절하게 기다리며 절규하그곳은 마치 아비규환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고통 속에서도 서로 응원하고 의지하고 축하하는 모습이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나는 이미 붙은 A대학도 정말 좋은 학교라고 아이를 격려했지만, 아이는 희망 B대학의 합격만을 바라며 오로지 <수만휘>에 오르는 B대학 같은 전형 등록포기자만을 찾아 헤다.  나도 아이를 따라 <수만휘>를 좀비처럼 떠돌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4차 추합이 떴지만 역시나 불합격이었다.  그리고 4차부터는 몇 명이 합격했는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자기 앞에 몇 명이 있는지도 이제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4차 추합 발표 얼마 후 아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왔다.


  "엄마, <수만휘>에 어떤 애가 4차 추합 되었는데 내 앞 앞 번호래.  그럼 마지막 추합 때는 내가 합격할 수도 있어. 나 예비 1번 아니면 2번이야."

 생각보다 4차 추합 인원이 많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추가 합격자는 0명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의 기대를 몰라주고 합격의 문이 아이 앞에서 닫혀린다면 아이가 받을 상처가 너무 컸다.  아이의 가느다란 희망이 안쓰럽고 두려웠다.  두렵던 마지막 날,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아이는 자기 침대와 벽 사이 좁은 틈에 쭈그려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을까?'

 를 올려다보는 초췌한 이의 눈빛이 마음 아팠다.


  5차 추합 발표 시간인 저녁 8시가 다가오자, 나는 주방을 뱅글뱅글 돌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평생 유아독존으로 살아오던 불쌍한 인간이 자식의 간절함에 뻔뻔히 신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날을 돌아보며 회개했다.  내가 지은 죄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게 파노라마처럼 무수히 떠오르며 나는 절로 겸손해졌다.  무엇보다 평생 나를 위해 살아온 엄마에게 툴툴 대기만 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내 자식을 위하는 마음의 절반만이라도 엄마에게 잘하겠다고, 어리석은 나를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엄마, 공지 떴어." 

 아이의 격앙 목소리가 들렸다.

  " 됐어.  난 못 보겠어. 너랑 아빠가 봐."

 나는 주방 구석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잠시 후 남편은 소리 지르며 거실로 뛰어나왔고, 아이는 울고 있었다.

 " 왜? 왜?"

 나는 무서워서 소리 질렀다.


 "엄마, 합격이야. 엉엉엉."

 "장난하면 안 돼. 엄마 놀랜다니까."

 "합격이라니까. 엉엉엉"


  그제야 나는 아이를 붙들고 같이 울었다.

 우리의 야단법석자다 깬 엄마는 방을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왜 그라노. 무슨 일 났나."

  "엄마 고마워. 고마워."

 무뚝뚝한 내가 엄마를 와락 부둥켜 안자, 엄마는 뭔지도 모르고 기분 좋아하며 같이 안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아이의 합격증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말했다.

 " 지금 바로 A학교에 전화해서 등록 취소해라. 마감 30분 남았다. 너처럼 누군가도 절실하게 그 자리의 합격을 기다리고 있어."

 아이는 내 말에 바로 A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등록 취소 신청을 했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홈페이지에서 등록 취소를 했다.)

 

 다음날 아침 <수만휘>에 들어가 보니, [생각지도 못한 합격]이라는 글로 A대학의 해당 학과 합격증이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4일 정도 들어가 본 <수만휘>라는 카페를 통해서 나는 우리나라 수험생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혹시 00 대학 @@학과 빠지는 사람 없나요?"

 " C대학 몇 번 까지 전화받았나요?"

 " 등록 포기하실 거면 빨리 부탁드려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저 예비 1번인데 이대로 끝일까요?"

 그 아이들의 애절한 호소가 내 아이의 호소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우리 아이가 마지막 추합까지 가지 않았다면, 최초 합격을 했다면 절대 몰랐아이들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그러면서도 좌절 또는 비난하지 않고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댓글들 속에서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영혼이 느껴져 더욱 가슴 아팠다.  세상이 이들을 경쟁하게 만들고 대학의 서열로 나누지만 이 아이들의 순수함과 열정만큼은 서열 따위 없이 모두 아름답고 따뜻하고 멋졌다.  추가합격 마감을 알리는 밤 9시가 되는 순간 아이들이 남긴 작은 탄식들이 지금도 내 가슴을 콕콕 찔러,  감히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의 글을 나는 남겨보려 한다.


………▷▷▷▷▷▷▷▷▷▷▷▷▷▷▷▷………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 수험생 아이들아.  

 너희들의 이번 좌절 지금은 누구의 위로도 와 닿지 않을 만큼 아프고 쓰린 상처라는 것을 나도 조금은 안단다.  나도 과거에 첫 입시를 실패했었. 원했던 대학이 집에서 가까웠던 나는 합격자 발표날, 걸어서 대학 정문 앞에 붙은 합격자 공고를 보러 갔었어.  그날 그 커다란 하얀 벽면 빽빽이 쓰인 수험번호와 이름 속에 내 은 없었단다.  대학의 길고 긴 돌담길을 따라 돌아오던 그 날은 내게 너무나 춥고 멀게만 남아있단다.  그렇게 돌아온 집 안에는 아무렇게 널브러 이불들이 꼬질꼬질한 채 눈에 들어왔었어.  순간 못난 딸을 위해 이 추운 겨울에 일을 나가신 엄마가 떠올랐. 나는 자책하는 마음으로 그 이불들을 수돗가로 끌고 나와 발로 밟으며 빨래를 시작했. 그렇게 이불들을 다 빨고 나는 잠을 청했.  밤늦게 들어온 엄마는 마당에 이불들이 널려 있고, 눈물 자국이 덕지덕지한 얼굴로 자는 척하는 나를 내려다 보고는 합격여부를 않고 등 어만져주셨. 그때의 쓰린 마음을 동안 잊고 살다가 이렇게 <수만휘> 카페를 보며 다시 떠올리게 되었.  이번의 실패가 너희를 다시 일으켜 세울 뜨거운 불쏘될 거란 걸 나는 알아.  넘어지는 건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일어서는 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하길. 


  그러니 자책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 말길 바란다. 너희들의 3년은 절대 헛되지 않았어. 너희들의 시간과 땀과 부모님의 노고는 너희들을 분명 성장시켰고 어떤 모습으로든 너희를 빛낼 것이.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대입의 실패를 맛보았던 나의 고통이 나를 좀 더 성장케 하였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야.


  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지 않더라도 너희들의 따뜻한 마음 단단한 의지로 너희들은 충분히 빛나는 인생을 머지않아 휘날릴 테니.


ps ; 좌절하던 우리 아이에게 격려의 쪽지를 보내준 <수만휘>의 여러 수험생과 희망과 축하의 쪽지를 보내 준 한 수험생 학부모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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