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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Dec 29. 2019

스무 살, 어른 아이가 되는 아들에게

넌 할 수 있어

  이제 엄마의 품을 떠나려는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그때가 떠오르는구나.  학교 운동회날 강강술래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추석 전날 음식을 만들고 추석날 저녁에 친척들과 노래방을 다녀온 다음날이었다.  아직 네가 태어나려면 3개월이나 남았기에 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느끼던 때였어. 그런데 주말 새벽녘에 배가 서서히 아파오면서 나는 덜컥 겁이 났단다.  그렇게 병원을 달려갔고 의사에게서 너는 어쩔 수 없이 지금 태어나야만 할 운명이란 걸 들었다.  그리고 너를 받아줄 인큐베이터가 있는 병원이 부산 전체에서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는 걸 알고 우리는 그곳까지 구급차를 타고 갔었다. 하필 그날은 부산 최대의 백화점이던 '태화쇼핑'이 마지막 폐점 행사를 하던 때였고, 우리는 네가 혹시나 구급차 안에서 태어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오랜 정체 끝에 겨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  그렇게 도착하고 얼마 후 너는 태어났고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졌지.  겨우 1000g으로 태어난 너를 두고 의사는 24시간 고비라고 했단다. 그 시간 동안 네가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한 달 안에 별 일이 없으면 생명은 보장될 것이고 최소 1년은 장애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어. 그 이야기를 너의 아빠가 나에게 전할 때 나는 이 상황이 꿈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너는 황달과 미숙아 망막증, 미세기관지염, 탈장수술 등 많은 고비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단다.  여전히 너는 말을 조금 더듬고, 오른쪽 발목은 힘이 없어 끝이 조금씩 들려 있고, 키는 유난히 작지만 그래도 운동 좋아하고,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친구들과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무사히 자라나 우리의 자랑이 되었단다.


  네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생각나는구나.

유독 작은 너를 세상 속에 처음으로 놓아두는 마음은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거 같구나. 엄마에겐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너는 아기이기에.  그때 나의 마음과 바람을 담아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에 맞춰 너의 성장과정과 작은 편지글을 넣어 만든 영상물 네게 보여줬었지.  초등학교 입학식 날 콩알 같은 너의 손을 꽉 잡고 너를 내려다보았을  노란 외투 속에  파묻혀 긴장한 너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나.


    이제 나는 너에게 두 가지 부탁으로 <넌 할 수 있어>를 말하려 한다.   첫 번째는 남과 너를 비교하지 않길 바란다. 넌 내게 대학 입학 선물로 키높이 신발을 사달라고 했지.  얼마 전 나는 너에게 말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릴 때부터 너와 함께 자라온 동급생들이고 성장기인지라 너의 작은 키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 수 있다고.  하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넓은 대학 캠퍼스 수백 명 속에서 너는 너무 작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그 속에서 네가 위축되지 말길 바란다고.  나는 그날 담담히 말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무척 아팠단다.  그때 네가 말했지.  너의 삶에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게 있다면 그게 키라고.  좀 더 노력해 볼 걸 다고.  사실 엄마도 그렇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병원에서 너에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라고 했을 때 나는 차마 네 보드라운 살에 매일 주사 바늘을 넣을 자신이 없었고, 인공적인 호르몬인가 뭔가를 네 몸속에 넣는다는 것이 막연히 무서웠어.  그래서 해 보겠다고 하는 너를 붙들고 그냥 와 버린 걸 지금은 아쉽게 생각해.  하지만 너도 알잖아.  엄마는 절대 길게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작은 키가 네 핸디캡이 되겠지만, 너의 꿈과 열정을 결코 막을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알.  

  그래서 감히 말한다.  너 자신을 믿으라고.

  네가 말했지.  합격할 때 그렇게 기뻤던 대학 입학이 이제는 그렇게 기쁘지 않고 두렵다고.  휴대폰으로 보는 너희 학교 단체 채팅방에 올라오는 신입생들의 글을 보며 느껴지는 무언가가 너를 자꾸 움츠려 들게 만든다.  그래. 부산에서도 변두리 아파트 단지 안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넓은 곳으로 나가본 적 없는 네가, 모두가 너를 아는 이 작은 동네에서만 살던 네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서울이라는 낯선 대도시, 큰 학교 그리고 기숙사에 던져질 너 자신이 두려울 테지.  하지만  그들과 너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을 믿고 너의 의지대로 굳세게 나아가길 바란다.  당한 은 누구도 만만히 볼  없단다.


  두 번째는 절제에 대한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될 너는 술, 담배, 이성 문제 등에서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을 수 있겠지.  내가 알기에 한 번도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만나 본 적 없는 너이기에 20대라는 뜨거운 청춘을 보낼 너의 대학 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보고 설레는 날이 올 수 있을 거야.  그때 가능하다면 그 아이의 외적인 화려함이나 가벼운 매력에 혹하지 않길 바란다. 그보다는 내면의 숨겨진 매력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나도 그러했지만 20대의 나이에 외적인 매력에 현혹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뜨겁게 불타는 사랑보다 천천히 스며들며 알아가는 사랑이 더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걸 네가 알게 된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너의 사랑이 통하지 않는 일방의 것이라면 조금은 네 감정을 내려놓길 바란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노력보다는 진심일 때가 많은데 그것은 오히려 감정보다는 이성의 눈을 가질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의 자유의지 이성의 힘으로 너 자신을 조절해서 성인으로서 학생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너를 내 품에서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이 너에게 더 좋은 일이라 믿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고 감사하다.  1000g의 작은 아이로 태어났던 네가 3개월의 생사를 이겨내고 2kg이 조금 넘는 몸으로 처음 병원 으로 나왔을 때의 환희와 감사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 너를 담당했던 의사 찾아갔었다. 눈물바람으신생아 집중치료실로 너를 면회 가던 3개월간의 나에게 한 번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던 얼음 같던 그 의사는 그날도 담담히 나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너의 성장한 모습을 찬찬히 바라볼 뿐이었어.  그 순간 나는 깨달았지.  나에게 희망적인 말을 하지 않았던 그 힘들었던 3개월의 시간 오히려 나에게 힘을 주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나도 서울에서 홀로 설 너를 담담히 지켜봐 줄 생각이다.  네가 힘들 때 스스로 이겨내고 어른이 되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것으로 너를 응원할 예정이다. 다른 사람보다 힘들게 시작했고 열심히 살아와 주었기에 앞으로의 너의 시간도 여전히 힘들고 벅차겠지만 너는 멋지게 해낼 거라는 걸 나는 믿겠어.  그렇게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할 생각이다. 른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너를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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