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특별히 좋아하는 과일이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블루베리가 좋다. 딱히 맛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 과일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보랏빛이 감도는 검푸른 빛의 깊은 색깔이 일단 내 취향이다. 심심한 듯 새초롬한 새콤함도 한몫한다. 풀 아래 숨은 들꽃의 처연함에 눈이 가듯, 다른 과일의 요란한 새콤달콤보다 맛인지 향인지 모를 은은함이 혀끝에 한동안 머문다.
초여름이 다가오니 생블루베리가 나온다. 살짝 비싼 가격에 망설이다 가장 작은 통에 담긴 것을 사 온다. 그리고는 찬물에 몇 알을 살살 씻어 요거트에 넣고 땅콩과 아몬드 한 줌 섞어 살살 저어서 떠먹는다. 그러면 요거트의 보드라움에 견과류의 텁텁함이 은은 상콤한 블루베리 덕에 화합을 이룬다. 그렇게 혀끝을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블루베리의 탱글한 새콤함이 터지면서 잠시 현실의 밋밋함을 잊는다.
입이 궁금하고 허전한 날, 아이스블루베리를 냉동실에서 꺼낸다. 믹서기에 블루베리 한 줌, 요구르트 한 컵, 우유 한 컵을 넣고 갈아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블루베리요거트를 작은 병 하나에 담아서 옆에 두고 한 모금씩 마신다.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어 두고, 세상의 음료 중에 가장 맛있는 나의 음료로 며칠 동안 부드러운 새콤함에 작은 행복을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두 번째 음식은 커피이다. 작년까지 나에게 커피는 믹스커피였다. 고된-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노동 뒤에 마침표를 찍듯 하루 한 잔 꼭 먹어주는 비상약처럼, 때로는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어색함을 피할 수 있는 윤활유처럼 나에게 달큰 찐득한 동지였다. 하지만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면서 커피는 피로한 나를 위한 비상약이 아니라 내 영혼의 메마름을 적셔주는 단비가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머그잔 가득 연하게 탄다. 전날의 삶에서 아직 깨지 못한 나의 영혼을 위해 한 모금 넘기면 가벼운 씁쓸함이 혀끝과 목구멍을 따뜻하게 넘어가며 새로운 하루를 리셋해준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 진행과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키보드 소리만이 흐르는 빈 교실의 내 책상 위 커피잔의 존재는 그대로 잊힌다. 그러다 뭉친 어깨를 움직여주다 문득 발견하는 식은 커피잔. 나는 식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한다. 여전히 부드럽지만 차갑게 입술에 닿는다. 따뜻할 때의 씁쓸함보다 오히려 감미로워진 맛에 또 한 번 나의 영혼을 일으켜준다. 그리고 나는 점심시간까지 이 한 잔을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버틴다. 점심을 먹고 다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책상에 놓인다. 그 한 잔이 다시 비워질 때쯤 나는 컴퓨터를 끈다.
집안일을 끝낸 늦은 저녁, 드디어 찾아온 나의 휴식 시간에 다시 머그컵 가득 연한 커피 한 잔이 내 옆에 놓인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내 영혼은 그제야 숨을 돌리고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하루 3잔의 커피는 내 일상이 되었다. 커피잔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안정을 얻는 나에게 커피는 곧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