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읊조리기

산책길에서 별 하나를 보다

by 연구하는 실천가

그날도 살짝 따가운 늦봄 햇살 아래서 내가 사랑하는 일, 산책을 하였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하기에도 조금은 더운 듯하나 특별히 덥지는 않은 5월 말 오후 날씨는 그렇게 기분 좋은 땀을 흘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내 앞에 50대 후반의 아저씨 한 분이 비틀거리며 지그재그 걸음을 걷고 있었다. 좀 전까지 그가 앉았던 벤치 아래에는 소주병 하나와 땅콩과자 한 봉지가 쓸쓸하게 구르고 있었다. 몇 걸음을 채 걷지 못한 그는 결국 길가의 표지판을 짚고 서서 주체할 수 없는 몸을 힘겨워하였다.

산책길 1.3km를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왔을 때 그는 표지판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 맨발인 채로 모로 누워 있었다. 그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나는 그의 표정 어딘가에 숨어있을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걸음을 살짝 늦춘 채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순간 낯선 자의 귀찮은 호기심이 느껴졌는지 그는 눈을 게슴츠레 다시 뜨려고 하였다. 난 얼른 열심히 걷는 자세를 취하며 못 본 척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날은 조용한 석양이 내리는 늦은 오후였다. 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지만 너무나 조용했던 그 무거운 평화로움 속에 나도 한 풍경이 되어 흑백 화면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평화 속에 작은 불협화음 같은 몸짓으로 벤치에 누운 그의 붉은 얼굴을 생각한다. 무엇이 그 평화로운 산책길, 조용한 늦봄의 풍경 속에 붉게 상기된 모습으로 그를 누워있게 한 걸까?

그도 그만의 우주가 있을 것이고, 그의 별이 있을 터이다. 그 우주 속 어딘가에서 그의 별이 조금 지쳤거나 아플 뿐이다. 집이 아닌, 또 의지할 누군가도 없이 심하게 평화로운 석양의 산책로에 낯선 존재로 도드라지게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야기가 그의 우주를 은하수처럼 흐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나태를, 누군가는 그의 약한 의지를, 또는 그의 어리석은 선택을 탓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나태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보다 강한 의지를 가졌던 것일까? 그보다 현명했던 것일까? 우리 중 누가 그의 우주가 나의 우주보다 보잘것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별이 흐리다 탓할 수 있을까? 각자의 우주는 각자의 궤도를 따라 열심히 달려가지만, 어쩌다 작은 운석 하나가 그 우주의 궤도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별은 상흔을 입을지언정 또다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래서 늦봄 아래 누운 한 우주가 다시 몸을 추스려 그의 궤도를 찾아 흘러가길, 그의 지친 별은 또다시 빛나길 바라본다.


산책길을 떠도는 엉뚱한 궤적을 가진 별 하나가 길 잃은 흐린 별 하나를 슬쩍 훔쳐보며 중력의 빛으로 힘껏 끌어당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