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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09. 2020

[개-]에 대한 쓸데없는 이야기 한 줌

  나는 요즘 [개-]라는 단어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개-]를 붙여 쓴다.  

'아~ 개덥고 개피곤해.'

뭐 이런 식이다.  


잠깐, 이 글을 읽으시는 저의  안지만 감사하고 소중한 교양 가득하신 독자님들.

저의 상스러운 표현에 혹시 적잖이 당황하셨는지요?  절대 가 지닌 교양과 상식에 의혹을 갖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 반항기 10대 소녀도 아닌 개늙은- 아니,  나이 좀 있는 교양인을 자처하는 제가 할 말이 아님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주로 혼자 머릿속으로 또는 남편 서 장난칠 때만 쓰는 표현임을 말씀드립니다.


   사실 굳이 변명하자면, 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에 관심을 가진 때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나쁜 것은 항상 그렇듯이 이건 모두 제 남편 입니다.  남편은 종종 주차장 좋은 곳에 한 자리가 운 좋게 비어 있으면 꼭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개재수!''

그럼 저는 교양인으로서 점잖게 훈계를 했습니다.

" 그런 말을 써. '와, 행운이야'라고 고쳐서 말해."

 하지만 교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남편은 항상 제 말을 무시하고 수시로 '개재수'를 외쳤답니다.   자꾸 듣다 보니 그 말 상스러우면서도 약간 웃기기도 해서 결국에는 피식 웃고 넘어죠. 그러다 즘은 제가 그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다 이제 아예 [개-]라는 말을 여기저기 붙이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   


  [개-]의 국어문법적 역할을 굳이 설명하자면, 주로 명사 앞에 붙어서 '하찮은, 야생의'를 뜻하는 접두사로 그 명사의 뜻을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낱말로 개나리가 있는데, 참나리와 비슷하지만 산이나 길에서 보다 쉽게 보이는 흔한 꽃을 뜻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개망나니, 개망신'과 같이 정도가 심한 것을 뜻할 때 부정적인 의미를 강화하는 접두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서 말하려는 [개-],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을 중심으로 많이 쓰이는 '개재수, 개좋아' 등은 그 [개-]와 조금 다른 듯합니다.  오히려 '부정적이거나 하찮은'의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것을 강화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개-]는 [아주, 매우]의 의미를 좀 더 강조하여 세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명사 앞이 아니라 형용사 앞에 붙어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개맛있다, 개빠르다, 개좋아.'처럼 '아주 맛있다, 아주 빠르다, 아주 좋아'와 같이 쓰이면서 부사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국어 파괴적이면서 거친 표현들을 제가 마음에 들어하고 자주 쓰는 걸 대학 때 존경했던 한글학자 김 00 교수님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한심해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언어는 언어학자가 아니라 대중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을요.


  그러니까, 독자 여러분.  지금 저의 이 한 줌의 글이 비록 개재미없고 개쓸모없어서 개어이없으셔도 제발 개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가 주시길.

이상 개가벼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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