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Jan 06. 2021

빌어먹을 이념 따위

영화 <스윙 키즈>를 보고

  분단문학이 붐을 이루던 시대가 있었다.  그 분단문학은 나의 90년대 대학시절을 가로지르며 나의 가치관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몇십 년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오늘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시청하게 된 영화 <스윙 키즈>에서 아련했던 그 시절 감성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그냥 재미 삼아 소파에 누워 보던 내가 어느 순간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분단 문학 내지 분단 예술들은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서로 다른 이념이 칼이 되어 피를 튀기며 이념도 사람도 진저리 치게 만들었다.  또한 서로 다른 이념의 논리 속에 탄생한 작품 속 인물은 이념 속에 매몰되어 평면적이며 현학적인 존재들로 딱딱한 막대기 같았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논쟁적인 분단 논리를 벗어난 영화로 '웰컴 투 동막골'이 있었다.  관념적 이념 논쟁을 뛰어넘는 신선함에 처음에는 매료되었지만 너무나 환상적인 영화 속 분위기는 더욱 허상을 쫒는 허무함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스윙 키즈'는 이념을 논하지만 말이 아닌 춤을 매개로 하였다. 그러한 감성이 오히려 현실을 더욱 잘 드러냈다.  그리고 그 현실이 인간의 아픔으로 와 닿았다.


  그렇게 내게 기억되는 최고의 장면 2개는 다음과 같다.


1. 싸움은 춤으로.

-  싸우려는 북한군 포로 기수에게 미군 하사 잭슨은 말한다.  “싸움은 춤으로”

그리고 기수를 때릴 듯이 각목을 들고 달려드는 미군들도 그 각목을 흔들며 춤대결을 신청한다.

;  이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그런 이념의 허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실체가 있는 몸으로 추는 춤으로 싸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쨍한 쾌감을 느꼈다.  

'그래,  이 전쟁 찌질이들아, 이게 싸움이야. 이게 진정한 싸움!  뭣도 아닌 이념때문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놈들아!'

이런 외침이 내 마음속에서 막 튀어나왔다.


 2.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키우는 소녀가장 판례와 기수의 춤이 교차되는 장면

 - 뛰어난 춤 실력을 가진 두 소년소녀가 거친 맨땅에서 춤을 춘다.  한 명은 비참한 피난민들의 삶으로 얼룩진 어떤 골목에서, 또 한 명은 이념 전쟁이 한창인 포로수용소의 붉은 간판 아래에서.  그저 행복한 얼굴로 춤에 푹 빠져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 춤의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이념의 창을 꽂을까 나는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멋진 영상에 푹 빠졌다.  이는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깔고 이들의 춤을 환상적으로 편집한 감독 덕분이기도 하다.


모든 분단 예술이 그러하지만, 혹자는 이 영화가 편향되었다 말할지도 모른다.  혹은 진실과 다르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이면서 또한 아닐 것이다.  그 당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었을까.  누가 옳고 누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념은 아무 잘못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념은 선도, 악도 아닐지 모른다.  그저 공포에 빠져버린 나약한 인간들이 가장 악했던 건지 모른다.  


 그렇게, 전쟁 영화 치고는 눈물 나게 웃기고 가슴 터질 듯 경쾌했던 영화이기에 나는 결말이 어떨지 미처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 영화나 분단 영화에서 예상되는 그런 어두운 결말을 예상 못하고 무작정 해피엔딩일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결말은 내게 반전이었고 충격이었다.   말도 안 되게 포로수용소에서 이런 탭댄스팀이 만들어지고 엄청난 춤 실력을 갖추고 또 무대에 선다는 것이 너무나 환상적일지라도 결국 결말은  현실이어야 했다. 그랬기에 이 영화는 완성되었다.  

이들의 춤 제목처럼.

'빌어먹을 이념 따위!'

매거진의 이전글 쑥을 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