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게으름 (또는 찌질함)에 대한 변론

by 연구하는 실천가

또다시 이주일 넘게 글을 쓰지 않는 나를 향해 나는 이렇게 외쳐본다.


“너, 너무 게으른 거 아냐?”


여유 시간이 조금 나면 먼저 정신없는 집안을 청소하고 며칠째 펼치지 않은 책을 몇 장 읽거나 몇 주째 쓰지 않는 글을 써야 하는 게 명확한데, 주야장천 나는 휴대폰만 뒹굴거리며 본다.

결론은 났다.

“나는 게으르다.”


그러자 또 다른 내가 반론을 편다.

“아니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직장일, 집안일, 엄마 돌봄까지 15시간 이상 많은 일을 쳐낸다. 그것도 혼신의 힘으로. 자투리 시간에 휴대폰을 보며 내 심신에 쉼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

“고로 나는 게으르지 않다.”


다시 처음의 내가 반론을 말한다.

“아니다.

자투리 시간이라기엔 많은 시간이며, 무계획적이며 소모적이다. 의무를 다한다고 내 심신을 돌보는 일에 손을 놓는 것은 본인에게 상당히 게으른 짓이다.

달콤한 간식 같은 인터넷 서핑과 sns 보는 게 더 좋다고 시간을 무작정 써버린다면 패스트푸드에 쌓여가는 혈관 속 찌꺼기처럼 몸과 마음은 둔해질 것이다. 몸을 건강한 에너지로 다시 채우는 독서와 글쓰기를 다시 매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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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행했던 자신의 성향을 테스트해 보는 mbti에 의하면 나는 infj-t이다.

infj-t는 가장 흔치 않은 성격 유형으로 인구의 채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순수하고 감상적이지만, 깊이 내재한 이상향과 도덕적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친절하지만 때에 따라 단호함과 결단력을 보인다.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지만 고독을 즐기고, 계산적인 면이 있어 이기적이지만 때로는 지독히 이타적인, 원칙주의자에 계획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게으른 면이 보이는 이들은 한마디로 모순덩어리인 건가?


나의 찌질함의 원인은 혹시 여기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완벽과 결핍의 혼돈 속에서 비루한 척 자신을 내던지는 자신만의 생존법과 같은 것이다. 흔히 보잘것없고 하찮은 모습으로 부정적인 언어인 찌질함은 그렇게 많은 인간들을 오해받게 만든다. 그들은 생각이 많아 신중하며, 경험하기 전에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감히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확고한 신념과 공익에 대한 도덕적 관념으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올곧게 버텨낸다. 현실적 외향주의자들이 볼 때 그들은 우직하게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만 해내고, 그에 대한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왜 자신의 것을 챙기지 않느냐고 찌질해 보인다며 혀를 찰지 모른다. 99%의 사람들이 가리키고 나아가는 방향에 딱히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선의의 마음으로 자신을 돌보며 타인에게 너그러운 그들은 그래서 이기적인 이타주의자이며, 혼돈스러운 원칙주의자이고, 고독한 사회친화주의자이며 부지런한 게으름뱅이다.


고로, 나는 그동안 글을 쓰기에는 너무도 게을렀으나 주어진 일에 헌신함에 있어서 너무도 부지런하였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부지런하기 위해 게을렀으며 , 게으르므로 부지런하였다.


방금 한 시간 동안 이 글을 쓰느라 살짝 부지런하였기에 당분간 조금 게으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