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저렇게 아들을 찾는데 한 번 오라고 해요."
요양보호사의 말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띨 뿐이다. 나는 어제도 동생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그 메시지를 읽은 것은 만 하루가 지나서였고 역시나 답은 없었다. 다행히 지금 엄마의 상태는 이제 최악의 정점을 찍고 점차 안정기로 접어들어 나도 이제 견딜만해졌다. 하지만 동생에 대한 씁쓸한 마음은 여전히 다독여지지가 않는다.
원래도 연락이 잘 없던 동생이지만, 내가 연락을 하면 곧바로 답은 주었는데 요즘은 잠수를 타듯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동생은 나에게 어떤 부분이 섭섭했던 걸까? 오전, 오후로 나눠서 하루에 요양보호사 2명이 총 9시간 동안 엄마를 돌봐 주니 한 달에 나가는 비용이 무려 200만 원에 육박한다. 그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라는 나의 말이 기분 나빴던 걸까? 엄마가 계속 너를 찾으니 집에 좀 오라는 나의 계속된 문자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동생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일반 직장인보다 수입이 나을 거라 생각했고, 나는 이처럼 힘들게 엄마를 모시는 입장인데 당연히 물질적 부담 정도는 동생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동생에게는 어떤 유세로 보였을까?
동생은 다음 달부터는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의 부담은 어렵겠다는 답을 며칠 전 보내왔다.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더욱 말을 아끼는 것이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 여겼던 것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나 싶은 마음이 순간 확 들었다.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성가심, 불편함, 부담감이었을 뿐인데 내가 동생의 마음을 너무 좋게 해석해버렸나 싶었다. 그러자 나는 나의 고통과 노고를 모르는 동생의 냉정함에 문득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그래, 이제 그렇게 부담하자. 대신,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엄마 보러 오고, 병원에 약 타러 가는 거는 니가 좀 하고, 일 년에 3~4일은 네가 엄마 좀 봐라. 우리 가족도 바람 쐬러 좀 가자고.'
동생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괜히 보냈다.'
나는 그동안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 내가 갑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철저한 을이었다. 엄마 문제로 동생과 부딪치는 일이 생긴다면 내가 큰소리를 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문제가 발생하니 동생은 무응답, 나는 안절부절이 되었다. 정작 손을 내밀고 연락이 안 되면 아쉽고 답답한 쪽은 나였다. 내가 을이었다.
갑작스러운 잠수에 답답한 내가 또 먼저 메시지를 보낸다.
'혹시 나한테 섭섭한 거 있는 거 아니제? ^^'
이것도 묵묵부답.
나는 또 후회한다.
'괜히 보냈다.'
왜,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 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더 베푸는 사람이 곤란한 상황이 되면 을이 돼버리는 걸까? 받는 입장의 사람은 너무 미안해서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슬픈 표정으로 입을 꾹 닫으면 그만인 걸까?
그래서 나는 지금 아주 계획적으로 집요하게 소심하고 치사한 복수를 결심 중이다.
'두고 봐. 엄마가 안 계시는 날이 오면, 네가 그 무뚝뚝한 얼굴 다 풀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 걸지 않는 이상, 절대 내가 먼저 연락 따위는 안 할 거야. 나도 그때는 아쉬울 거 하나도 없을 거거든!’
엄마는 지금도 아들이 왜 자기를 보러 안 오냐고 연락 좀 해보라고 나를 채근한다. 나는 또 자존심을 접고 전화를 해 볼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