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함, 그것은 관대함이다
나를 키운 건 결국 나의 자의식이었다
"나는 왜 쉬운 게 하나도 없지?"
일그러진 얼굴로 집에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그때 내가 던진 이 말과 함께 주절주절 이어지는 나의 이야기에 엄마는 내가 아닌 딴 곳만 계속 바라보았다.
"그랬겠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는 위로의 말도, 꾸짖는 말도 아닌 이 한마디로 본인의 먹먹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순간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날은 큰 맘먹고 시작했던 운전면허 학원을 그만둔 날이었다. 아무도 원치 않던 인문계 고등학교를 꾸역꾸역 들어가고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 독서실에서 나 홀로 재수를 해서 대학에 합격하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4년 등록금과 생활비를 해결하였다. 졸업 후 1년 반의 임용대기 기간을 학원강사와 기간제 교사로 쉼 없이 달려와 드디어 초등교사로 발령을 받은 즈음이었다. 그동안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목표도 꿈도 없이 그저 달렸었다. 그만큼 남들은 쉽고 당연하게 이루는 걸 나는 애써 노력해야 겨우 가진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저 남들처럼 안정되게 돈을 벌고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때였다.
어려운 가정환경과 소심한 성격, 그리고 부족한 재능과 약한 체력으로 항상 뭐든 쉽지 않았고 크고 작은 관문마다 실패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또다시 툴툴 털고 다시 일어섰다. 그것이 체육시간 공던지기 실기 평가일 때도 있었고, 피아노 학원에서 며칠 째 한 곡만 연습해도 늘지 않는 실력일 때도 있었다. 손 끝이 야물지 못해 가정 가사 수업 시간에 옷 만들기를 하면 항상 엉성하고 예쁘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예쁘게 수놓은 앞치마를 만들어 입던 짝의 옆에서 내가 만든 앞치마는 그렇게 후줄근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늘상 만만한 독서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꿈과 목표는 <다른 사람처럼 살아보자>가 되어 남들의 발 뒤꿈치를 바라보며 열심히 따라갔다. 그러다 삶에 허덕이는 내 얼굴이 유리창에 비추이면 어둡고 막다른 골목에 나 혼자 맞닥뜨린 기분이 들었다. 매캐한 고무 냄새가 나는 작은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는 날이나, 높은 담벼락의 집에서 무뚝뚝한 고2 여학생 과외를 하고 나오던 늦은 밤엔 더욱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남들처럼 살자>라는 목표를 이룬 교사 임용일이 며칠 지나고, 나는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었다. 이제 나는 정말 남들처럼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작은 차를 몰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남들과 다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운전학원에서 실기 연습을 하던 어느 날, 내 앞으로 다가오던 운전 연습용 소형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나는 그만 살짝 박아버렸다. 운전면허 학원 직원은 내게 '보험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수리비를 모두 내야 한다'라고 하였다. 나는 '보험 안내를 받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안내를 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5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던 한 소심한 여자는 그렇게 제대로 항의도 못 해보고 수리비를 내고 학원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길고 긴 내리막 길을 터덜터덜 걸어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지친 다리를 겨우 지탱하며 그동안 꾹꾹 눌러 놓았던 속마음을 엄마에게 토하듯 털어놓았다.
" 엄마, 나는 왜 쉬운 게 하나도 없지? 남들은 쉽게도 따는 운전면허를 결국 따지 못하고 돈만 두 배로 날렸어. 나는 항상 한 번에 되는 게 없었어. 대학 합격도 그랬고, 어떤 시험도 나는 멀리멀리 돌아서 갔어. "
그리고 지금 나는 남들처럼 살고 있다. 적당한 평수의 내 집을 갖고 적당한 빚을 매달 갚으며, 적당한 차를 몰고 적당히 돈을 모으며 적당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까 꿈을 이룬 것이다. 돌아보면 열심히는 살았지만 어떻게 살까 고민해 보지 못한 여유 없는 팍팍한 삶이기도 했다. 그래서 적당히 남들처럼 잘 사는 지금도 막막했던 그때의 흔적들이 내 삶 속에 부득부득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것이 바로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으로 일컬어지는 나의 찌질함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말하건대, 이 찌질함을 나는 감히 관대함이라 부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뭐 하나 쉽지 않았기에 남들에 대해서 뭐 하나 쉽게 생각하지 않는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잘 모르겠어"
이 두 문장으로 요약되는 나의 자의식은 내 삶이 만들어 낸 나의 찌질어이자 내 사고의 토대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코로나 상황으로 학생들의 가정에서는 매일 아침 자가진단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유독 한 가정에서 계속 하지 않고 있다. 나는 그 가정으로 매일 자가진단 실시를 부탁하는 문자를 보낸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선생님은 내게 말한다.
"그렇게 하시면, 내년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거예요. 강하게 말씀해서 다시는 잊지 않게 만들어야지요."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린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남편은 말한다.
너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몰라'야.
남편이 장난으로 던지는 나의 캐릭터론에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정답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가진 상대주의자라고 항변한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고, 내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건 몰라'가 정답이라고 말한다.
비록 실패와 불안의 삶이 나의 자의식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이 토양이 되어 나는 뭐 하나 쉽고 만만하게 생각되는 게 없지만 그것에서 나는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 생겼다고 감히 말한다. 그것이 나 스스로를 찌질하게 만들어서 나를 자책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와 관대함을 가진 세상에 2%밖에 없다는 '선의의 옹호자'형이 되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내가 했으면 다 잘했을 거'라는 말을 달고 사는 '엄격한 관리자' 형인 나의 남편이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만만할 뿐 어느 누구도 만만하지 않다.
재능은 없고 실수는 많은 편이었던 내게 수많은 고비는 나를 수없이 시험했지만, 막막했던 그 고비는 사실 나를 키우는 통과의례였던 적이 많았다. 내가 부러워했던 남들도 각자의 관문에서 그들의 통과의례를 치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로 인해 실패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오만한 자신의 굴레를 스스로 벗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찌질한 감성의 소유자들이 세상의 구석진 곳에서 이 냉랭한 세상을 미지근한 언어의 온도로 녹여준다고 믿는다. 이렇게 구시렁거리면서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잘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겠지."
"몰라."